“닭과 오리 구입하신 분 신고를…”
6일 오전 AI 문자에 울산시내 발칵… 식당업주들 항의에 문자 다시 발송
시민들 “탁상행정 이제 그만해야”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울고 싶었는데 국민안전처와 울산시가 뺨까지 때렸습니다.”
울산에서 수십 년째 삼계탕 식당을 운영하는 A 씨(57). 그에게 현충일인 6일은 차마 기억하기 싫은 ‘악몽의 날’이었다. 국민안전처가 이날 울산 시민에게 잇따라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이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A 씨는 “휴일 손님 수를 예상하고 삼계탕을 준비했지만 3분의 1도 못 팔았다”고 했다. 오리구이집을 하는 B 씨(56)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조류 관련 음식점 주인들의 이런 설움은 사실상 울산시와 국민안전처 간의 불통이 만들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를 사회재난으로 분류한 국민안전처는 지방자치단체가 원하면 해당 지역에 긴급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다. 울산은 AI 발원지로 추정되는 전북 군산의 종계(種鷄) 농장에서 출하된 닭이 재래시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확인된 지역이어서 AI 확산 방지를 위해 긴급재난문자를 보낼 요건은 충분했다.
그러나 문자 내용이 문제였다. 6일 오전 10시 44분 49초, 울산 시민에게 보낸 문자는 ‘AI 관련, 5월 27일 이후 닭이나 오리를 구입하신 분은 울산시 농축산과(1588-4060), 구·군 축산부서로 신고바랍니다’라고 돼 있었다.
울산시가 당초 요구한 문구는 살아 있는 닭과 오리를 의미하는 ‘닭과 오리를 구입해 키우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키우시는 분’을 삭제하고 보냈다. 살아 있는 닭과 오리만이 아니라 죽은 닭과 오리, 즉 식용을 구입한 식당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이때부터 닭과 오리를 취급하는 울산 시내 식당에서는 난리가 났다. 식당 업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울산시는 국민안전처에 ‘키우시는 분’이라는 문구를 넣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오전 11시 50분 38초, 이 문구를 삽입한 문자가 재전송됐다. 그래도 업주들의 항의가 폭주하자 울산시는 음식은 안전하다는 내용의 문구를 넣어 보내줄 것을 국민안전처에 다시 요청했다. ‘닭, 오리 고기를 끓이거나 최소 섭씨 70도에서 30분 이상 가열한 뒤 조리해 드시면 안전합니다’라는 세 번째 문자가 발송된 시간은 이날 오후 2시 16분 31초. 하지만 한번 끊긴 손님의 발길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 씨는 “처음 보낸 긴급재난문자에 ‘끓이거나 구워서 먹으면 문제가 없다는 문구 없이 닭과 오리를 구입한 사람은 모두 신고하라’고 적혀 있어 손님이 뚝 끊겼다”며 “울산시 해당 부서로 항의를 겸한 신고 전화를 해도 끝끝내 불통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7일 오전까지 긴급재난문자를 보고 재래시장에서 닭을 샀다고 신고한 사람은 고작 18명이었다. 울산시와 국민안전처가 현장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보낸 문자 때문에 식당 업주는 업주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한 시민은 “관료들이야 무심코 문구를 만들겠지만 그 문구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은 생사가 걸려 있다”며 “탁상행정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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