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종대]‘영원한 제국’의 몰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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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가 비선 실세의 딸 정유라 씨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가 1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류 교수는 이인화(二人化)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92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등단한 그는 이듬해 정조의 독살설을 모티브로 한 ‘영원한 제국’으로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등단작은 1980년대를 겪어내야 했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작가적 자질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등단작부터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 등 국내외 작가 작품들을 표절했다는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렸다. ‘영원한 제국’ 역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표절 시비가 일자 그는 필명과 실명을 번갈아 쓰며 ‘방어용 셀프 평론’을 하다가 비평가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가 언제부터 박근혜 대통령 및 최순실 씨 일가와 인연을 맺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부터 그 단초가 엿보인다. 그는 소설에서 정조의 ‘홍재 유신’이 실패함으로써 ‘박정희의 10월 유신’까지 우리 민족사가 160년이나 후퇴했다는 식의 사관(史觀)을 보였다. 1997년 출간한 3부작 소설 ‘인간의 길’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대놓고 ‘시대의 영웅’으로 미화했다. 2014년엔 최 씨의 측근 차은택 씨와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15년 10월엔 박 대통령의 제안으로 출범한 청년희망재단 초대이사도 맡았다. 이 재단은 대기업들로부터 단기간에 수백억 원을 거둬 강제모금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부친이 교수였던 그는 학창시절 줄곧 ‘범생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학점 특혜 문제가 불거지자 조교에게 답안지까지 대리 작성하게 해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 한 것은 스승으로서 도저히 용서받기 어렵다. 이화여대 사태 당시 학생들과 함께했던 김혜숙 교수는 교수신문에 기고한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에서 ‘돈과 권력의 부역자’로 전락한 일부 대학교단을 개탄했다. 교수가 영혼을 팔면 그가 가르치는 진실도 위선이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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