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계보 이을 재목”, 러시아도 인정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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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12일 16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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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권혁주/동아일보DB
사진=권혁주/동아일보DB
31세의 젊은 나이에 숨진 채 발견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씨는 어떤 음악가 였을까.

3세에 바이올린을 잡아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린 권혁주 씨는 지난 1995년 내한한 한 러시아 교수의 권유로 모스크바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 그의 나이는 9세에 불과했다.

부친이 평범한 회사원이었기에 권혁주 씨 가족은 권 씨의 유학비 마련이 쉽지 않았지만, 러시아 측에서 학비를 3분의 1로 낮춰주고 금호문화재단에서 도움을 줘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모스크바는 기악분야에서 ‘영재 소리’ 들으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지난 2000년 권혁주 씨는 마침내 모스크바 음악계의 샛별로 떠오른다. 그해 12월 ‘모스크바 현대작곡가 음악회’에서 러시아 작곡가 가운데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티혼 흐레니코프의 작품을 연주해 호평을 받은 것. 음악회를 찾은 모스크바 콘서버토리 교수 등 저명 음악인들은 권혁주 씨에게 “유럽 순회공연을 다녀도 충분한 실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당시 권혁주 씨의 연주를 들은 흐레니코프도 “기존의 어떤 연주보다 내 마음에 쏙 들게 작품을 해석했다”면서 “러시아 바이올린 핵심 계보인 하이페츠와 오이스트라흐, 막심 벵게르프를 이을 재목”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줄곧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한 권혁주 씨는 2004년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4년 대한음악협회 올해의 신인대상, 2005년 제2회 금호음악인상 등을 수상한 권혁주 씨는 2012년 안양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 강단에 섰다. 권혁주 씨는 지난 2013년 10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제안이 왔을 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면서 “교수 생활을 하면 악기를 놓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연주 횟수도 많아졌고, 생활이 안정되니까 연주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기사제보 dn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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