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에 휴대전화… 칼치기… 편도 75분간 반칙 22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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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17>대형차량 폭주를 막자
도로위 무법자 시내버스

《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근처의 교차로.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지만 시내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운전석을 바라보니 버스 운전사는 왼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중이었다. ‘빵’ 하고 울리는 경적에 깜짝 놀란 운전사는 그제야 버스를 출발시켰다. 그러면서도 손에 쥔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운전사는 미처 대화를 못 끝냈는지 운행 중에 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운전사가 휴대전화를 조작하느라 순간순간 한눈을 파는 사이 오토바이 여러 대가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

○ 시내버스 사고로 사흘에 1명 사망


 
 ‘시민의 발’로 불리는 시내버스가 오히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시내버스 교통사고 사망자는 109명. 최근 잇따른 대형 교통사고로 공포의 대상이 된 전세버스(40명)나 고속버스(9명)보다 오히려 인명 피해가 크다. 올 2월 경기 평택시에서는 일가족이 탄 화물차가 신호를 위반하고 교차로를 달리던 버스와 충돌해 어머니와 아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는 경기 수원시에서 신호 위반 버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5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4, 5일 한국교통연구원 임재경 연구위원과 함께 서울의 시내버스 운행 실태를 점검했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버스는 도로 위 ‘최상위 포식자’였다. 급차로 변경, 정지선 위반 등 다른 차량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반칙 운전’이 평균 3, 4분에 1회씩 반복됐다. 덩치가 작은 일반 차량은 버스를 피해 곡예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팀은 서울 강북구와 관악구를 오가는 간선버스, 금천구와 서초구를 오가는 지선버스를 직접 타고 차고지에서 회차 지점까지 교통법규 위반 실태를 확인했다. 버스전용차로 구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로를 갈지자로 주행하는 반칙 운전은 여전했다. 금천경찰서 앞 정류소를 출발한 버스는 도로를 횡단하듯 4차로에서 2차로까지 2개 차로를 한꺼번에 가로질러 끼어들었다. 다음 정류소까지 거리가 2km도 안 됐지만 굳이 추월 차로에 끼어들어 차량 서너 대를 따라잡은 뒤 ‘칼치기’(급격한 차로 변경)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 ‘반칙 운전’ 점수를 계산해 봤다. 두 버스의 교통법규 위반은 각 22회. 모두 적발됐다고 가정했을 때 각각 범칙금 69만 원, 75만 원을 내야 한다. 벌점도 105점, 90점에 달했다. 벌점은 운전면허 정지 기준(40점)을 넘겼고, 면허 취소(1년 121점) 기준에 육박했다. 왕복이 아닌 편도 운행만 점검한 결과다.


○ 100km 달릴 때 위협 운전 68회


 눈으로 측정할 수 없는 버스의 위협 운전은 더 심각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3∼2015년 사업용 차량의 디지털 운행 기록을 분석한 결과 시내버스는 100km를 달릴 때 위협 운전을 68회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폭 운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화물차(18회)의 4배에 가까웠다. 위협 운전은 과속 급출발 급정차 급회전 등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11가지 운전 습관을 포함한다.

 사고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 건 보행자다. 2012∼2014년 서울에서 발생한 버스 교통사고 사망자 137명 중 114명(83.2%)이 보행자다. 특히 버스중앙차로에서 사고가 잦았다. 횡단거리가 짧아지면서 무단횡단이 늘어난 반면 급출발 급정차 등 버스의 위협 운전 습관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 운전사들도 이런 운전 습관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한국운수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버스 운전사들이 꼽은 사고 원인은 차로 변경(30.6%), 급출발·급제동(22.1%), 신호 위반(9.1%) 등이 대다수였다. 1분, 1초라도 빨리 가겠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임 연구위원은 “사고를 줄이려면 디지털 운행 기록을 분석해 위협 운전이 잦은 운전사나 회사에는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디지털 운행 기록 제출은 의무 사항이 아니다.
○ 노선·휴식·교육 바꿔야 사고 줄인다

 버스 운전사들은 운행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서울의 경우 4∼5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노선은 하루 2회, 3시간 미만의 단거리 노선은 3회씩 운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착이 늦어지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버스 운전 30년 경력의 이모 씨(65)는 “왕복 40km 거리를 2시간 50분 안에 돌아와야 하는데 제때 밥이라도 먹으려면 신호 대기나 정류소 정차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형식적인 안전 교육도 문제다. 한국운수산업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3년 동안 안전 교육을 받은 횟수는 평균 1.4회에 불과했다. 교육 대부분은 비디오 시청 등 실효성이 낮은 내용이다. 반면 일본의 운수회사들은 직급별, 연차별 안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외 안전교습소에서 체험 실습 교육까지 받는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5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노선을 대폭 개편해야 운전사의 피로도와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시내버스#폭주#대형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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