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파업에 ‘태풍 상처’까지… 3중고에 우는 울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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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 할퀴고 간 태풍 ‘차바’]울산 혁신도시 아랫동네 ‘물바다’
태화시장 주민 “2007년 착공후 집중호우때마다 침수 피해
배수시설 제대로 안갖춰 禍키워”… 市, 총리에 특별재난지역 요청
태풍 ‘차바’에 사망 7명-실종 3명… 남부에 8일까지 또 120mm 물폭탄

 “저수지를 머리에 이고 살아오다 이번 폭우로 둑이 터지면서 꼼짝없이 물폭탄을 맞은 꼴이지요.”

 6일 울산 중구 태화시장. 태풍 ‘차바’로 물에 완전히 잠긴 기계를 물로 씻어내던 T참기름집 주인 송모 씨(55)는 일손을 멈추고 북쪽을 가리키며 분통을 터뜨렸다. 송 씨가 가리키는 곳은 울산 혁신도시다. 신도시가 새로 만들어졌지만 배수시설을 충분히 확충하지 않아 빗물이 혁신도시 아래로 쏟아지면서 태화시장의 피해가 컸다는 것이다.

  ‘차바’가 휩쓸고 간 울산의 중심 태화시장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상인 모두가 물에 잠겼던 집기와 물품 등을 씻어내고 상가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시민들은 자연 현상인 태풍의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업 불황에 이은 태풍 피해, 그리고 현대자동차 파업이란 ‘삼중고(苦)’에 ‘경제특구’ 울산이 울고 있다.

○ 허술한 배수시설이 화(禍) 키워

수해 복구나선 군장병들 태풍 ‘차바’로 큰 침수 피해를 입은 울산 중구 태화시장에서 6일 군 장병들이 
피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육군은 이날 수해 복구를 위해 제2작전사령부 소속 장병 5500여 명을 울산, 부산, 경남 
양산 등 영남 지역에 투입했다. 육군 제공
수해 복구나선 군장병들 태풍 ‘차바’로 큰 침수 피해를 입은 울산 중구 태화시장에서 6일 군 장병들이 피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육군은 이날 수해 복구를 위해 제2작전사령부 소속 장병 5500여 명을 울산, 부산, 경남 양산 등 영남 지역에 투입했다. 육군 제공
 태화시장 수해 역시 인재(人災)였다. 울산 혁신도시의 빗물은 대부분 유곡천을 통해 태화강으로 유입된 뒤 동해로 빠져나간다. 태화시장에서 30년째 인테리어 사업을 이어온 우무화 씨(73)는 “혁신도시 준공으로 산을 깎아내다 보니 토사가 다 쓸려 내려와 배수구를 막아버렸다”고 주장했다. 실제 태화시장 내 한 지하주차장 앞에는 군경이 일일이 퍼낸 약 1kg의 진흙주머니가 100여 개 쌓여 있었다. 태화시장 우정시장 등 혁신도시 아래에서 이번 태풍으로 주택과 상가 등 1000여 곳과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이 침수됐다. 태화시장 인근 아파트 주민 1명도 지하주차장에서 숨졌다.

 울산 혁신도시는 태화시장에서 직선거리로 약 2km 위인 중구 우정동 함월산(해발 201m) 자락에 2007년 4월 착공돼 올해 말 준공할 예정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혁신도시 조성 당시 빗물 저류조 5개를 만들었고 유곡천과 연결된 저류조 1개는 용량이 471만8000L다. LH는 재해영향평가를 통해 시간당 76.3mm의 비가 내릴 때를 가정해 만들었다. 이번 태풍의 시간당 최대 강수량 139mm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혁신도시가 조성되기 시작한 2008년 7월 26일과 2014년 8월 17일의 집중호우 때도 주택과 상가 침수 피해가 발생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물폭탄을 맞은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태화시장의 낙후한 배수시설도 문제였다. 태화시장은 저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배수구 대부분이 4m 이상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고 구멍 역시 작은 편이었다. 자원봉사자인 김모 씨(42·여)는 “물을 퍼내는 작업을 하던 인부가 ‘이렇게 좁은 배수구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말했다”고 했다. 우 씨도 “농사지을 때 물 빼는 도랑만도 못한 배수구를 만들어 놓았으니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울산시와 중구청은 뒤늦게 배수시설 확충에 나섰다. 박성민 울산 중구청장은 6일 현장을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저지대인 태화·우정시장 일원의 빗물을 강제배수하기 위한 배수시설을 2019년에 완공할 예정으로 내년에 착공하겠다”며 국비 500억 원을 지원해 줄 것을 건의했다.

○ “먹고살기 좋은 울산도 옛말”

 태화시장과 우정시장 상인들은 침수된 집기를 물로 씻고 가게에 가득 찬 흙탕물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등 복구에 안간힘을 쏟았다. 울산시는 태풍이 지나간 5일 오후 6시부터 전 공무원 비상근무를 명령한 데 이어 6일에도 필수요원을 제외한 울산시와 전 구군 공무원들이 피해 복구에 참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경제 불황에다 재난까지 직면한 울산 시민들의 민심은 흉흉했다. 주민 김치운 씨(58)는 “중공업 불황에 현대자동차 파업이 이어져 경제도 안 좋은데 지진에 물폭탄까지 쏟아져 ‘이래서 살 수 있겠느냐’는 말까지 나온다”면서 “먹고살기 좋은 울산도 다 옛말이고 가장 힘든 시기가 와 버렸다”고 말했다.

 태화시장에서 쌀가게를 운영하는 박원호 씨(54)도 “장이 선다고 멥쌀 찹쌀 잡곡 등을 360포나 들여놨는데 물에 젖어 2000만 원어치 ‘생돈’을 1t 트럭 4대에 실어 다 버렸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계획에 반발해 7일 세종시를 항의 방문하려 했지만 일단 수해복구에 힘쓰겠다며 일정을 연기했다. 울산시는 황 총리에게 울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건의했다.

○ 7, 8일 또 비…울산 부산 또 물폭탄 우려

 부산에서도 피해가 심각한 해운대 마린시티 등 해안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피해복구 작업이 이뤄졌다. 부산시에 따르면 119종합상황실과 16개 구군에 신고된 태풍 관련 피해는 모두 453건에 달했다. 특히 해운대해수욕장에 설치된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빌리지 야외무대가 파손돼 영화제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차바’로 인한 인명 피해(6일 오후 기준)는 전국적으로 사망자 7명, 실종자 3명으로 집계됐다. 전국적으로 공장과 상가 170여 곳이 비 피해를 입었고 농작물 9330ha가 침수됐다. 침수·낙하물 피해 등으로 인한 자동차보험(자기차량 손해) 신고는 4309건으로 집계됐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태풍 피해 지역에 재난안전관리 특별교부세 등을 지원하고 필요하면 관련 예비비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남부 지역에서 피해복구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또다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큰비가 예보돼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7일부터 흐려지고 낮에 제주도에서 비가 시작된다. 이날 비는 밤부터 남부지방과 충청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에서 8일까지 비가 길게 이어지면서 강수량은 30∼80mm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리산 등 산간 지역과 남해안 일대에는 120mm 이상의 물폭탄이 쏟아질 것으로 예보됐다.

 기상청 관계자는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많은 양의 수증기가 남부지방으로 유입되는 데다 지형 효과가 더해지는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은 8일 오전 중에 많은 비가 집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정재락 raks@donga.com·차길호 / 부산=강성명 기자
#태풍#울산#구조조정#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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