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 설립을 둘러싼 학교와 학생 사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미래라이프대는 ‘선취업 후진학’을 모토로 고졸 직장인 등이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평생교육 단과대학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기존 학부생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미래라이프대 설립에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사실상 교수들을 억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일부 학생이 억류 중이던 총동창회장과 교수에게 기저귀를 던지거나 모욕했다는 증언까지 나왔고 돈을 주고 용역업체 직원을 부른 정황까지 포착됐다. ○ 점거와 억류, 동상에는 욕설
지난달 28일 이화여대 단과대 대표들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 등의 주도로 재학생과 졸업생 등 400여 명이 대학 본관에 모였다. 이곳에서는 미래라이프대 설립을 심의하기 위한 대학평의원회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학생들은 회의에 참석하러 온 교수들과 총동창회장 등 7명을 사실상 볼모로 잡은 채 최경희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당시 최 총장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양측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학생들의 집단행동은 과격하게 바뀌었다. 농성 현장에 있던 학생과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심야시간 평의원들의 휴식을 위해 불을 끄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곧바로 반대에 부딪혀 2시간 정도 불을 끄는 것에 합의했다. 일부 학생은 새벽시간에도 점등과 소등을 반복하며 계속 구호를 외쳤다.
또 일부 학생이 화장실에 가는 70대 총동창회장에게 기저귀를 던지거나, 당뇨병으로 소변을 자주 보러가는 교수에게 “남자가 화장실에 자주 가면 ××가 약한 것”이라며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급기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총동창회장과 교수 한 명은 119구급대를 불러 현장을 나갔다. 그 대신 교무처장과 교직원 1명이 들어갔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30일 13개 중대 1000여 명의 경찰을 학교에 투입해 마지막까지 본관에 갇혀 있던 교수와 교직원 등 5명을 구출했다. 최초 억류 때부터 약 45시간 만이었다. 학내 문제 때문에 대규모 경찰력이 대학에 투입된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학생들은 집단행동 전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이화이언’을 통해 1300여 만 원을 모금했다. 이 커뮤니티에는 경호업체에 수백만 원을 지불한 입금 명세서와 경찰 대처 방안까지 올라와 있다. 실제 시위 첫날인 지난달 28일 용역업체 직원들로 보이는 20명 안팎의 건장한 청년들이 본관 앞에 서성이는 모습이 목격됐다. 본관 앞 김활란 초대 총장의 동상에는 빨간색 스프레이로 “최경희 꺼져 ㅗ(손가락욕설 형상)”란 낙서까지 등장했다. 농성장 등에서는 최경희 총장에 대해 ‘학생이 개돼지로 보이냐’는 구호까지 나왔다.
사태가 악화되자 학생들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의견이 나왔다. 30일 총학생회 기자회견 때 이른바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학생이 마이크를 잡자 지켜보던 학생들이 “정치색 입히지 말라”며 격렬히 항의했다. 이 학생은 결국 31일 다른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장 면담이라는 최후의 협상카드를 두고 경찰력을 요청한 학교 측의 대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학교 측은 “경찰력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 없다”고 해명했으나 경찰은 31일 “총장이 직접 경찰력 투입을 요청했다”고 반박했다. ○ “학위 장사” vs “여성 위한 평생교육”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미래라이프대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이다. 5월 1차로 대구대 명지대 부경대 서울과기대 인하대 제주대가 선정됐고, 지난달 2차로 이화여대 동국대 창원대 한밭대가 추가됐다. 이화여대 측은 “여성 교육의 지평 확대”라고 주장하는 반면 학생 측은 “학위 장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동국대 등 다른 대학들은 대부분 큰 이견 없이 단과대 설립을 추진 중이다. 단과대 교육 내용과 학위가 기존 학부생과 명확히 구분되는데도 다른 대학과 달리 유독 이화여대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학생들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학교 측의 소통 노력이 부족했던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미래라이프대뿐만 아니라 이전 사업들도 학생 의견 수렴 없이 졸속 처리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촉박한 일정 탓에 학생간담회를 진행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계획 단계에서 총학생회장도 포함된 대학평의원회 보고를 거쳤다며 학생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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