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동물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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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아리랑’ 김호중-강태훈씨 “교감 통해 마음의 상처 치유효과”

9일 서울 강서구 방화대로 활주로상상어린이공원에서 동물보호단체 애니멀아리랑 회원 이지희 씨(오른쪽)와 팀장 강태훈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자원봉사자들이 유기동물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9일 서울 강서구 방화대로 활주로상상어린이공원에서 동물보호단체 애니멀아리랑 회원 이지희 씨(오른쪽)와 팀장 강태훈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자원봉사자들이 유기동물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나는 주인을 얻지도 못한 채 앞발을 잃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어요. 나는 그에게 물었어요. 내 주인이 되어줄 거니?”

9일 서울 강서구 방화대로 활주로상상어린이공원. 이지희 씨(25·여)는 지난달 태어난 수컷 백구에게 사고로 앞발을 다친 길고양이를 다룬 동화책 ‘아름다운 철도원과 고양이 역장’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운 백구는 이 씨의 품속에서 책에 눈을 맞췄다. 떠돌이 개였던 백구의 엄마 무지개는 임신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잃었지만 다행히 여섯 형제를 제왕절개로 낳은 뒤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씨는 두 달 전부터 동물보호단체 ‘애니멀아리랑’의 유기동물에게 책 읽어주기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2년 전까지 수도권의 한 건강원에서 식용견으로 살다 구조된 수컷 잡종견 도트, 앞다리가 구부러진 장애를 가진 수컷 길고양이 행운이, 남양주에서 학대를 당하다 구조된 암컷 잡종견 남주도 이날 애니멀아리랑 회원들과 책을 읽었다. 이 씨는 “두 달 전만 해도 사람의 손길을 피하던 동물들이 상처를 극복하며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기뻐했다.

2013년 애니멀아리랑을 만든 김호중 씨(49)와 강태훈 씨(30)는 지난해 말부터 유기동물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유기동물 보호 활동에 동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구조 손길을 피하던 동물이 책 읽기 후 밝은 모습으로 새 주인을 만나는 해외 사례를 보고 결심했다”며 “처음에는 책 읽기에 무관심했던 동물들이 조금씩 책 읽는 소리에 반응해 눈을 맞추고 귀를 세우는 걸 보고 책 읽기로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현재 애니멀아리랑에서 개와 고양이 등 19마리가 보호를 받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애니멀아리랑의 뜻에 공감해 모인 수도권 각지의 자원봉사자 10명이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 이들을 찾는다.

회사원 장한결 씨(28·여)는 지난해 15년간 키우던 반려견 노루를 떠나보낸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그는 “동물은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노루와 이별하고 나서야 그동안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그런 마음의 빚을 유기동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함께 극복하고 있다. 동물과 함께 책을 읽으며 저도 위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박다예 인턴기자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4학년
#애니멀아리랑#동물보호단체#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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