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학점 평가 내용 공개” vs 교수·학교 “공개 강제 어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5일 11시 34분


서울 주요 대학 A 씨는 1학기 한 과목에서 C+를 받았다. 보통 보고서는 전날 쓰는데 이번에는 1주일동안 공을 들였다. 제출 전 바꿔본 친구의 보고서는 하루 만에 쓰느라 분량을 늘리려 넣은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성적은 B+이었다. A 씨는 중간·기말고사는 잘 봤다는 생각이 들어 교수에게 “항목별 평가 내용을 알고 싶다”며 e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각 대학의 1학기 성적 발표가 최근 마무리된 가운데 최종 성적만 공개할 게 아니라 평가 항목별 세부 내용을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학생들 커뮤니티에서 빗발치고 있다. 학생들은 성적 평가 항목별 공개는 학생의 당연한 권리이고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은 평가의 내용과 기준 공개를 거부하거나 불편해하는 교수들에게 불만을 표시한다. 한 수업에서 B+을 받은 홍익대 4학년 신모 씨는 중간·기말고사와 조모임을 모두 잘했다고 생각해 교수에게 성적 확인을 요청했다. 교수는 불쾌하다는 듯 “조모임 태도를 한번 생각해봐라”고만 했다.

서울대 4학년 최모 씨는 평가의 세부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자 “유난 떤다” “취업 때문에 그러느냐”는 답변을 들어 황당했다. 서울 B대 2학년 박모 씨는 성적에 대한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성적 공지가 확인 마감 2시간 전에 올라와서다. 연세대 박모 씨는 “중간고사에서 뭘 실수했나 궁금해 성적 확인을 요청했더니 교수가 ‘만약 확인하고 아무 이상이 없으면 마이너스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가의 세부 내용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학 시험은 서술형이고 레포트도 정량평가인 것이 대부분이라 평가 결과를 피드백 받아야 한다는 것. 서강대 3학년 이모 씨는 “서술형 시험은 내 글의 단점을 알고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며 “비싼 학비도 냈는데 점수만 달랑 주는 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다”고 말했다.

교수와 학교 측은 성적 세부 내용 공개 강제가 어렵다고 말한다. 서울의 주요 대학 교무처장은 “원칙적으로 평가에 대한 피드백은 주는 게 맞다”면서도 “최근 대학들이 연구 실적을 강조하다보니 일부 교수들이 교육에 쏟을 여력이 부족해졌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학 교수는 “학생들이 요청하면 당연히 공개한다. 하지만 반드시 공개하게 하면 성적을 고쳐달라는 요구로 업무가 마비될 것 같다”고 했다. 서울 C대 학사과 관계자는 “교수들에게 성적 평가 공개를 하라고 강제하는 건 평가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가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명확한 평가 기준과 결과를 알려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주요대 D 교수는 시험과 보고서 점수를 사이버강의실에 각 학생이 정한 별명으로 올린다. 그는 “학생들이 성적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평가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제 한양대 교무처장은 “교수들이 저마다 평가 기준과 결과를 갖고 있으므로 공개 요구에 응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최예나기자 yena@donga.com
신규진 인턴기자(연세대 국어국문학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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