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지방대생 A 씨(22)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화장부터 워킹, 면접 기술까지 돕는 미용실 비용 700여만 원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미스코리아 배출 등용문으로 알려진 미용실 회원 가입비까지 합치면 비용이 10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큰돈이지만 아나운서를 꿈꾸는 그는 “미스코리아 타이틀은 아나운서가 되는 프리패스(Free Pass)권”이라는 미용실 원장의 설득에 부모님에게까지 손을 벌려 대회에 나갔다.
과거 미스코리아 타이틀이 연예인이 되는 지름길이었다면 최근엔 취업을 위한 ‘스펙’이 됐다. 특히 아나운서와 리포터, 승무원 등 외모가 경쟁력인 직종에서는 최고의 스펙으로 꼽힌다. 서울의 한 미용실 관계자는 29일 “6월 8일 열리는 미스코리아 서울지역 예선 참가자 10명 중 5명이 아나운서를 꿈꾸는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한 미용실 원장은 “미인대회 타이틀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문계 학생이나 명문대 재학생의 참가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겨 지역 예선에 출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과 대구 등 ‘인물’이 많다고 알려진 지역을 피하려는 꼼수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재수 삼수를 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거주지를 바꿔 출전하기도 한다. 2014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B 씨(22)는 서울 토박이지만 지난해에는 부산으로, 올해는 대구로 거주지를 옮겨 참가했다가 낙방했다.
이에 따른 폐해도 늘고 있다. 아예 중국과 일본, 미국으로까지 거주지를 옮기기도 한다. 해외 주소 이전이 까다롭고 예선 기간에 실제로 해외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돕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브로커들은 유명 미용실을 통해 해외 출전을 원하는 참가자들을 접촉한다. 부산의 한 미용실 관계자는 “2000만∼3000만 원 정도를 내면 중국에서의 출전을 도와줄 브로커가 있다”며 기자에게 “필요하면 연결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미스코리아 제조기’로 불리는 미용실은 심지어 수천만 원의 가입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유명 미용실일수록 가입비가 높지만 본선 진출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게 미스코리아 준비생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2014년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C 씨(23)는 “강원의 한 미용실 회원 가입비로 2000만 원을 냈다”며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은 비공개라고 하지만 원장이 연줄이 있어 사실상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아나운서 준비 학원 앞 카페. 미스코리아 출전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2명은 아나운서를, 1명은 일반 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미스코리아 준비 과정에서 금전적으로 과도한 경쟁이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모 씨(22)는 “수천만 원이 깨지고 예선이 학기 중에 진행돼 학업에도 소홀하게 되지만 취업 스펙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 미스코리아 본선 대회는 7월 8일 열릴 예정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