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친구 엽기사진 몰래 올려도 범죄?” 여중생들 ‘깜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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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에 멍드는 대한민국]<下> 연령 맞춤형 사이버윤리교육 시급

11일 경기 안양시 안양여중에서 열린 악플 예방 교육 현장. 윤상용 선플인성교육연구원 사무국장(오른쪽 위)이 “무시무시한 내용만이
 악플인 것은 아니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도 악플이 되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자 학생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안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1일 경기 안양시 안양여중에서 열린 악플 예방 교육 현장. 윤상용 선플인성교육연구원 사무국장(오른쪽 위)이 “무시무시한 내용만이 악플인 것은 아니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도 악플이 되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자 학생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안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헐, 이런 것도 처벌받나요? 욕먹을 만한 사람이잖아요.”

정규 수업이 끝난 11일 오후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여중 미술실. ‘악플(악성 댓글) 예방 교육’ 강의를 들으러 모인 이 학교 학생 36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못살게 굴고 욕을 한 사람을 찍은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정의감에 악플을 달아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말에 학생들이 놀란 것이다.

이날 강의는 선플운동본부 산하 선플인성교육연구원과 안양시청소년육성재단 만안청소년수련관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강의를 진행한 윤상용 선플인성교육연구원 사무국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하지만 정작 악플의 상세한 기준과 처벌 내용은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 모르고 된 ‘악플러’

학생들에게 이날 강의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등 SNS에서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행동하며 벌인 사소한 것들이 사이버 모욕죄 고소 대상 사례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요즘 여중생들 사이에서는 친구의 생일날 친구의 ‘엽사(엽기 사진)’를 몰래 찍어 동의 없이 SNS에 올리는 게 유행이다. “나만 볼게”라며 찍은 엽사도 ‘생일빵’이라며 무작정 SNS에 공개하기도 한다. 이 사진이 첨부된 글에 친구들이 “ㅈㄴ 못생겼다 ㅋㅋ” “저 얼굴로 어떻게 살까?”라고 댓글을 달며 놀리는 식이다.

이런 행태에 대해 윤 사무국장은 “심각할 경우 나중에라도 당사자가 사이버 모욕죄로 처벌을 원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며 “졸업앨범에 웃기게 나온 친구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려도 고소당할 수 있다. 나중을 대비해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지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헐” “대박” 등 추임새가 터져 나왔고 이윽고 교실이 숙연해졌다. 이혜빈 양(15)은 “친구들이 SNS에서 장난으로 욕을 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폭력이고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들었다. 매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김기문 청소년지도사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벌이는 짓궂은 장난들을 SNS에서도 똑같이 한다. 공개적인 공간이라는 개념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교육이 필요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카카오톡 등에서 개설된 단체대화방에서 친구에게 욕을 하면 다른 사람이 보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점도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비록 욕을 하지 않았지만 친구를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행동도 고소 대상이라는 내용이 나오자 학생들은 토끼 눈을 뜨고 서로를 쳐다봤다. 인다운 양(14)은 “악플에 해당되는 것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작은 실수나 사소한 것들은 악플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앞으로 온라인에서 말을 조심히 해야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게임을 잘 못하는 사용자에게 ‘ㄲㅈ(꺼져)’ ‘ㅅㅂ’ 등 초성으로 욕을 하거나 실명이 아닌 아이디를 지칭해 욕을 해도 처벌받는다는 내용에서도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윤 사무국장은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고소를 당하는 이유가 게임하다가 채팅창에서 발생한 일 때문”이라며 “아이디만 지목해 욕을 한 경우도 처벌되는 추세라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성인 교육은 부재

악플은 10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피의자를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20대 이상 성인 악플러는 62.6%에 달한다. 10대 악플러(11.3%)의 6배 정도 되는 수치다. 그런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악플 예방 교육은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성인에 대한 교육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대부분의 악플 예방 교육은 초중고교에 집중돼 있다. 악플 관련 교육에 대한 일반 성인들의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이버 윤리 교육을 실시하는 한국정보화진흥원(NIA) 관계자는 “학부모와 군인을 제외한 일반 성인의 사이버 윤리 교육 수요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바른댓글실천연대 관계자는 “성인 대상 교육은 전체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행사를 열 때 찾아오는 학생들과 함께 오는 부모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현실적으로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이찬성 선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인력과 예산도 부족해 성인보다는 미래의 인터넷 주 사용자인 학생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인 악플러와 청소년 악플러의 범행 동기가 달라 교육 내용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15년 사이버 폭력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의 범행 동기는 ‘남들이 하니까’(38.1%)가 가장 많았다. 반면 청소년은 ‘보복하기 위해서’(43.9%)가 가장 큰 이유였다. 임종인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청소년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악플을 달고 있어 잘못인 줄 모른다. 또 온라인과 현실을 구분 못해 충동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성인들은 커뮤니티에서 집단을 만들어 함께 공격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장은 “성인은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내적인 불행감이나 공허감, 고립감을 느낄 때 악플러로 변한다. 성인 악플러의 폐해도 많기 때문에 성인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양=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허동준 기자
#사이버윤리교육#악플#악플기준#청소년#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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