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판사와 검사의 돈, 명예, 권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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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사회부 차장
이태훈 사회부 차장
돈, 명예, 권력. 직업의 매력을 나타내는 세 가지 요소다. 기업인은 돈이 많지만 명예와 권력이 상대적으로 달리고, 정치인은 돈에 비해 명예와 권력이 크다.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은 돈은 별로 없지만 권한이 막강하고 공동체를 위해 일한다는 명예심이 높다. 회사원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임원이 되기 전까지는 돈, 명예, 권력과 거리가 있는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런데 법조인은 사법이란 공적 영역에서 일하면서 돈과 명예, 권력을 모두 갖고 있다. 판사나 검사가 되면 사법절차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옛날 과거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영예도 크다. 지방에서는 아직도 주민의 자녀가 사법시험이나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군수가 집으로 찾아가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고위 법관이나 검찰 간부로 재직하다 변호사로 개업하면 수십억 원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벌고, 많으면 100억 원대 이상으로 재산을 키울 수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돈, 명예, 권력 중에서 한 가지만 가져도 성공한 것인데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으니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법조인 양성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도 젊은 엘리트들이 줄을 서는 것은 이런 매력 때문일 것이다.

과거 판검사들이 퇴직 후 많은 돈을 벌었던 것은 현직에서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순기능이기도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검사들과 대화시간을 가졌을 때 김영종 검사(현 수원지검 안양지청장)는 노 전 대통령이 취임 전 뇌물 사건과 관련해 검찰 간부에게 청탁성 전화를 한 일을 공개해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토론의 명수인 노 전 대통령도 적잖이 당혹스러웠는지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고 응수해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현직 대통령의 면전에서, 그것도 TV로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대통령을 몰아붙인다는 건 일반 공직자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검사가 정말 세긴 세구나”가 하나였고, “검사들이 뭘 믿고 저러나”가 두 번째였다. 김 검사가 강하게 나간 배경이 무언지 알려진 건 없지만 아마도 ‘언제든 사표 쓸 준비가 돼 있고, 할 말은 한다’는 평소 검사로서의 소신을 대통령이 있는 특수 상황에 개의치 않고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에는 변호사 업계에도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법조인들의 재력이 과거만 못한 상황이다. 폐업하는 개인변호사가 급증하고 월급 300만 원짜리 변호사들이 속출할 정도로 업계 사정이 좋지 않다. 변호사 개업만 하면 돈방석에 앉던 것이 옛날이야기가 되면서 한직(閑職)으로 돌아도 현직에 머무르는 판검사들이 늘고 있다.

판검사들의 퇴직 이후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서 현직 판검사들이 유혹에 흔들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부적절한 청탁을 받더라도 퇴직 후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00억 원대 해외원정 도박 혐의로 기소된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의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불거진 20억 원 거액 수임료 논란 사건에는 현직 판사와 검사들이 로비의 대상이 된 듯한 정황이 여럿 등장한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곧 진상을 밝히겠지만 돈으로 죄를 무마하려는 비리 기업인에게 현직 판검사들이 부적절하게 휘둘린 것은 아닌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고질병이 법조계에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의 의구심과 허탈함이 커지고 있다.
 

이태훈 사회부 차장 jefflee@donga.com
#법조인#판검사#정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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