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전국서 탕탕탕… ‘멧돼지와의 전쟁’ 어디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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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하자!”… 인간도 멧돼지도 할말 있다

먹이가 떨어지고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멧돼지가 도심에 출현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멧돼지가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매년 인명 피해와 농가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도심에 출현하는 멧돼지는 퇴치하는 게 원칙이다. 2012년 광주 북구 영산강 용산교에서 119구조대와 야생생물관리협회 기동포획단원들이 사냥개를 동원해 멧돼지 포획훈련을 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먹이가 떨어지고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멧돼지가 도심에 출현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멧돼지가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매년 인명 피해와 농가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도심에 출현하는 멧돼지는 퇴치하는 게 원칙이다. 2012년 광주 북구 영산강 용산교에서 119구조대와 야생생물관리협회 기동포획단원들이 사냥개를 동원해 멧돼지 포획훈련을 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퀴즈입니다. 잘 들으세요. 이 동물은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로 잡식성 포유류입니다. 몸길이는 1∼1.8m고요. 이들이 서식지를 벗어나 우리 거주지를 침범하는 일이 최근 잦아지면서 ‘유해동물’로도 불립니다. 특히 사람을 공격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이 동물이 거주지역에 침입해 먹을거리를 파헤치는 일까지 자주 벌어져 ‘○○○와의 전쟁’이 선포되기도 했습니다. 이 동물은 뭘까요.”

사고 많아 멧돼지와의 전쟁 불가피

요즘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동물이죠. 정답은 바로 멧돼지입니다.

주거지역을 침입하는 동물 중에 그놈이 제일 독합니다. 이전에는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발견됐지만 요즘은 서울 등 대도시에도 자주 출몰해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죠. 지난해 서울 도심지에서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119구조대가 출동한 횟수가 364건이나 됩니다. 이게 한 달 평균으로 따지면 30.3건이에요. 하루에 한 번은 서울에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것이죠.

멧돼지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란다고요. 최근 사례를 볼까요.

1월 3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 성당 인근에서 멧돼지가 출현해 주민들이 겁에 질렸지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날쌘 멧돼지를 제압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멧돼지는 피부가 두꺼워서 권총 총알 한두 발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요. 순찰차 앞 범퍼까지 들이받은 멧돼지는 자정을 넘기고서야 은평구립도서관 근처에서 사라졌어요. 민간인 엽사로 구성된 기동포획단이 뒤늦게 출동했지만 놓쳤지요.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8시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흥겹던 대구 동구 봉무동 대구국제학교 사거리에 무려 3마리의 멧돼지가 갑자기 출현하기도 했어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1시간이나 수색해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숨어들어간 멧돼지를 발견했고 권총을 6발이나 쏴서 맞힌 뒤에야 사살할 수 있었어요. 멧돼지가 얼마나 날쌘지 나머지 두 마리는 그 사이에 사라져버렸죠.

멧돼지는 도심지뿐만 아니라 고속도로에도 출몰해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지난달 21일 오후 9시 40분경 광주 북구 용봉동 호남고속도로 상행 77.2km 지점에서 멧돼지 2마리가 불쑥 튀어나왔어요. 이를 발견한 카이런 차량이 이 중 한 마리를 들이받고 멈췄는데 이를 뒤따르던 쏘나타 차량도 받으면서 큰 교통사고가 났어요. 정말이지 멧돼지라면 질색이라니까요.

멧돼지가 사람을 놀라게만 하나요. 실제 피해로 이어지니까 더 큰 문제예요. 멧돼지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인명피해죠. 환경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멧돼지로 발생한 인명피해는 34건이었어요. 이 중 사망사고가 4건이에요. 지난해에도 멧돼지에게 허벅지를 물려 사망자가 2명이나 발생했지요. 매년 멧돼지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는 셈이에요.

멧돼지는 자신의 엄니 위치에 있는 성인 허벅지를 주로 물지요. 이 경우 허벅지 약 3cm 아래에 위치한 동맥혈관을 날카로운 엄니가 파고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과다출혈이 발생하기 쉬운 것이지요.

허벅지 동맥 물려 사망 피해

근데 말이죠. 사실 멧돼지는 인간을 포식하는 동물은 아니라고 해요. 잡식성이지만 동물성 먹이는 주로 지렁이 같은 소형 동물을 잡아먹을 뿐 도토리 등 식물성 음식이 주식이랍니다. 인간을 공격하는 행동도 포식자로서 덤벼드는 것은 아니고요. 굉장히 예외적인 행동이지만, 멧돼지가 흥분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을 적으로 인식하고 덤벼드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해요. 하지만 매년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까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어요.

멧돼지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상당해요. 멧돼지는 영농철 농가가 재배한 옥수수·인삼·고구마·배추밭에 들이닥쳐서 헤집어 놓거든요. 영리한 멧돼지는 사과나무를 쓰러뜨린 뒤 떨어진 과일을 먹기도 하고요. 겨우 키운 농작물을 멧돼지에게 뺏기는 농민들의 심정은 어떻겠어요.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멧돼지 때문에 발생한 농작물 피해액은 46억 원에 이른다고 해요. 이는 신고된 것만 집계한 것이라 그보다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이 버릇없는 동물이 조상들의 분묘를 파헤치는 일도 잦은데, 이는 피해로 잡히지도 않아요.

매년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이들의 서식 밀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입니다. 멧돼지는 번식력이 강한 동물이거든요. 늑대나 호랑이 같은 상위 포식자가 없다는 점도 개체 수가 늘어나는 데 유리한 환경이지요.

암컷 멧돼지의 임신 기간은 150여 일에 불과하고, 한 번 새끼를 낳을 때마다 8∼13마리나 낳거든요. 지자체 단위로 수렵장을 운영하고 연간 1만 명이 넘는 엽사에게 멧돼지 사냥을 허가하고 있지만 멧돼지는 꾸준히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전국에 약 30만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멧돼지의 적정 서식밀도는 km²당 1.1마리예요. 그러나 전국에서 멧돼지 서식밀도가 가장 낮은 경기지역도 km²당 2.2마리에 이른답니다.

지자체별로 멧돼지 퇴치작전을 마련하는 가운데, 환경부와 서울시는 15일부터 북한산 일대를 중심으로 ‘멧돼지 산으로 돌려보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시민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도심에서 출몰이 예상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기동포획단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지요. 신고가 들어와야 포획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먼저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이지요.


멧돼지의 변(辯)

“우린 억울해. 산에 먹을거리가 없어”


“인간들이 우리 서식지인 산악지대로 등산한다고 몰리잖아. 그놈의 등산열풍 때문에 우리 멧돼지의 서식지는 점점 줄고 있지. 요즘 도심 주변 산에는 등산로나 둘레길이 없는 곳이 없다니까. 예전에 우리만 살던 산에 인간들이 마구 길을 파헤쳐놓고 있어. 인간들은 마음대로 선을 그어놓고선, 자칫 넘기라도 하면 엽사들을 불러서 총을 쏜다고. 인간들은 우리더러 거주지를 침입한다고 손가락질하는데 기가 막혀서. 적반하장이야.

우리가 사람을 해치는 포악한 동물이라고? 우리는 사실 겁이 많은 동물이야. 웬만해선 등산로나 주거지 근처에 잘 접근하지 않는다고. 자칫 도심지에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알고 질겁해서 산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쉽지 않아. 여기는 편의점, 저기는 아파트여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기 일쑤거든. 사실 우리도 무서워. 거리에서 우리가 나타나기만 하면 엽사들이 총을 들고 오잖아. 엽사들은 커다란 쇠구슬 2개가 든 엽탄을 사냥용으로 쓴다고. 게다가 사냥개까지 끌고 다니니까 걸렸다 하면 우리도 끝장이지.

우리도 인간의 주거지역에 침입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 산간에 있는 우리 서식지에 먹이가 사라지고 있거든. 불량 등산객이 정해진 탐방로뿐만 아니라 여러 샛길을 넘나들면서 우리 서식지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우리의 주 음식인 도토리 등을 헤집어 놓거나 채집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황당하겠어. 인간으로 치면 갑작스레 실업자나 무직자가 되는 셈인데. 굶어죽지 않으려면 먹이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야. 음식물쓰레기 냄새를 따라 민가로 향하는 거지.

우리 멧돼지들의 서열경쟁도 도심지로 발길을 향하게 하는 이유지. 번식철에 서열경쟁에서 밀려난 놈들은 기존 서식지를 벗어나 다른 산으로 이동하는 게 이 세계의 비정한 룰이거든. 가뜩이나 서식 면적은 줄고 우리 인구도 늘어나면서 경쟁도 더 치열해졌지. 눈물을 머금고 다른 산으로 이동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도심지에 발길이 닿기도 하지. 그런 멧돼지들은 엽사에게 사살되곤 해. 요즘 어린 멧돼지들에게 경쟁에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가르쳐야 할 판이야.

먹고살기는 힘들고 내부경쟁은 치열하니까 요즘 이민을 생각하는 멧돼지도 많더라. 지난해 11월 26일 부산 강서구에 나타난 멧돼지들은 인근 가덕도에서 먹이를 찾다가 결국 2km나 헤엄쳐 건너온 녀석들이었지. 다 큰 어미가 4마리, 새끼가 7마리로 가족 멧돼지였는데 여지없이 사살됐어. 딱한 사연이야.

그래. 우리도 먹이만 풍부하다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산간 터전을 잘 지키면서 사는 게 좋지. 환경부의 이번 북한산 멧돼지 산으로 돌려보내기 프로젝트에 특히 관심이 많아. 산을 벗어나지 않는 멧돼지에게는 총을 쏘지 않기로 했고, 국립공원 안에서는 포획틀과 포획장을 이용해 잡는다며? 그렇게 잡은 뒤에도 죽이지 않고 국립환경과학원에 보내 연구 목적으로만 활용한 뒤 다시 산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구나 싶어.

또 환경부는 산에 있는 도토리 등 멧돼지 먹이를 가져가지 말라는 캠페인도 함께 벌인다네. 공존을 위한 이런 노력은 값지다고 생각해. 도심지로 나가는 길목은 펜스로 막으면서도 서식지를 연결해주는 통로를 만들 계획이래. 문제를 생태적인 관점에서 풀어가서 좋아.

언젠가는 서로를 유해동물로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멧돼지와 인간, 그리고 자연이 공존하는 법을 찾아가면 어떨까.”


▼흥분하면 무조건 덤비는 멧돼지… 갑자기 마주쳤다면▼

멧돼지 시속 50km로 달려… 도망가지 말고 숨는 게 상책

멧돼지는 사람을 먹이로 생각하진 않으나 흥분할 경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덤비는 습성이 있다. 만약 멧돼지와 마주칠 경우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멧돼지 전문가인 국립공원연구원 김의경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멧돼지가 사람을 보고 공격하기 위해 먼저 달려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따라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멧돼지를 먼저 위협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설명했다. 돌이나 나뭇가지, 등산스틱 등으로 멧돼지를 쫓아내기 위해 공격하는 시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 과잉 대응을 삼가라는 조언이다.

멧돼지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안 된다. 멧돼지를 먼저 발견한 경우에는 나무나 바위 등에 숨는 것이 좋다. 멧돼지는 움직이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시력은 나쁜 편이다. 뒤를 보이고 달려서 도망치는 것도 금물이다. 멧돼지의 달리기 속도는 평균 시속 50km나 된다. 사람이 이보다 더 빨리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가까운 거리에서 멧돼지와 마주쳤다면 침착하게 눈을 마주치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서야 한다. 이때도 가까운 곳에 나무나 바위가 있다면 그 뒤로 몸을 숨겨야 한다. 우산이 있다면 이를 펴서 몸을 가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멧돼지로부터 공격 위험을 감지할 경우 나무 등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가방으로 멧돼지의 주 공격부위인 허벅지, 정강이 등을 보호해야 한다.

멧돼지를 피해 나무 등 높은 곳으로 오를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적어도 성인 키 정도인 170cm 이상 높이에 올라가야 안전하다는 점이다. 다리가 짧은 멧돼지는 나무를 탈 수 없지만 육중한 몸매와 달리 150cm 높이까지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멧돼지와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등산을 할 때 탐방이 가능한 정규 등산로를 이용하면 멧돼지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저돌적인 인상과 달리 겁이 많은 멧돼지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인식하면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멧돼지#멧돼지 퇴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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