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급전이 필요했던 정모 씨(55)는 김모 씨(44)의 ‘청산유수’에 흔들렸다. 생활비는 바닥난 지 오래지만 직업이 없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정 씨는 결국 ‘눈 딱 감고’ 김 씨가 내민 허위 재직증명서를 작성했다.
김 씨가 떼어준다고 한 돈은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내놓은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대출금’이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재원으로 한다. 주택금융공사가 대출금의 90%를 보증한다. 하지만 곳곳에 ‘허점’이 있었다. 상품을 판매하는 일부 시중은행들은 대출심사를 실사 대신 전화로 했다. 일단 대출금이 나오면 임차인이 실제로 계약한 집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김 씨는 직원과 지인들의 명의로 유령회사 3개를 차린 뒤 대출이 필요한 사람 16명과 집주인 11명을 모집했다. 집주인에게는 “전세계약서를 써주면 대출을 받아 계약금의 일부를 주겠다”며 “문제가 되더라도 책임은 세입자에게 간다”고 안심시켰다. 직업이 없고 신용이 낮은 대출신청인들을 설득한 뒤 허위 재직증명서를 발급했다. 은행에서 확인전화가 와도 회사 관리인들이 받아 “직원이 맞지만 지금은 출장 중”이라고만 확인해 주면 그만이었다.
김 씨는 이렇게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은행 5곳에서 13회에 걸쳐 한 번에 적게는 6000만 원, 많게는 1억3000만 원씩 총 12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대출받았다. 들어온 돈은 김 씨와 모집책, 집주인, 임대인들 나눠 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김 씨 등 2명을 구속하고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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