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없는 노인들, 멀쩡한 환자 생활… “없던 병도 생길 지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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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방치된 노인들]<上>치료 목적 잃어가는 요양병원

《 고령사회를 맞는 한국 사회의 숙명인가, ‘현대판 고려장’인가. 2015년 말 현재 요양병원은 전국 1372곳에 이른다. 입원 환자만 연 3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치료나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아니라 갈 곳 없는 노인이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거주하는 숙소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3월에 전국 요양병원 483곳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중간 점검에 나선다. 복지부 관계자는 “요양병원의 선진국인 일본의 시스템 연구를 바탕으로 특화된 한국형 요양병원의 청사진을 이르면 4월 내놓겠다”고 밝혔다. 치료도, 돌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실태를 집중 점검한다. 》

3일 오후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넓은 방에 8개의 병상이 다닥다닥 놓여 있다. 비쩍 마른 70, 80대 남성 노인들이 병상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TV만 응시한다. 간병인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부정맥으로 이 병원에 5개월째 입원 중인 이모 할아버지(88)는 “10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살다가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서 내가 자식들에게 ‘요양병원에 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소주도 못 마시고 할 수 있는 활동도 별로 없어 하루하루가 지루하다”고 토로했다.

요양병원 생활이 10년째라는 신모 할머니(89)도 “하루 종일 연속극 보고 성경 읽고 세 끼 밥을 먹으며 무료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건강한 신 할머니는 치료를 거의 받지 않는다. 처음엔 자주 오던 가족도 이젠 명절과 어버이날, 생일에만 온다고 했다. 매주 목요일 오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이다.

○ 노인의 장기 숙소로 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요양병원은 전국에 1372곳, 입원 환자만 연간 33만여 명에 이른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요양병원은 의사, 한의사가 개설한 병원으로 노인 질환을 앓거나 외과 수술 뒤 회복이 필요한 노인이 주로 치료하기 위해 입원하는 곳이다. 비슷한 이름의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며 노인이 질환의 등급을 인정받아야 들어갈 수 있지만, 요양병원은 등급 없이도 쉽게 입원할 수 있다. 실제로 요양병원이 급속도로 많아진 것도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후 이 같은 틈새시장을 파고든 결과다.

그렇다 보니 요양병원은 치료나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아니라 갈 곳 없는 노인이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거주하는 요양원이나 숙소의 개념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 대한노인병학회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33%는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의료 처치가 불필요한, 이른바 ‘사회적 입원’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요양병원에 노인을 입원시킨 뒤 사실상 방치한다는 것. 취재 중 만난 한 노인은 “집에 가겠다고 몸부림을 치다 자해가 걱정된다며 온몸을 결박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기준 요양병원 병상은 약 20만 개로 전국 병상의 30% 이상을 차지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은 7.3%(4조2091억 원)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이처럼 적은 비용으로 많은 환자를 받아 주는 기관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요양병원은 설립이나 운영 기준도 허술하다. 의사 1명만 있으면 개설이 가능하고 의사 1명당 환자 수는 보통 35∼60명,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도 4.5∼9명에 이른다. 결국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 현 수가 체계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병원만 살아

의료계에서는 일당정액제의 수가 체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는 환자를 등급별로 구분해 하루 일정액의 치료비(약 4만9000∼8만2000원) 가운데 60∼95%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원한다. 따라서 병원에선 세부적인 진료 명세를 청구할 필요가 없다. 한 요양병원 원장은 “이러한 수가 체계에서는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는 게 병원 입장에선 가장 수익을 많이 남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적 입원’이 필요한 노인 환자를 최대한 많이 유치한 후 아무런 치료와 돌봄 서비스를 하지 않는 요양병원이 늘고 있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환자 부담 비용을 일부러 받지 않고 환자를 유치하거나 노숙자를 강제 입원시켜 건강보험 지원금만 받아 내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상당수는 뇌중풍 후유증으로 재활치료가 필요하지만, 100병상 이내의 작은 요양병원의 경우 이 같은 시설마저 갖추지 못한 곳도 많다.

물론 모든 요양병원이 이처럼 열악한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3년 전국 요양병원 1104곳을 대상으로 적정성을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에 92점 이상을 맞은 1등급 기관은 113곳(10.2%), 2등급(91∼84점)은 315곳(28.5%)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 환자가 내는 비용은 보통 월 60만 원에서 200만 원. 좋은 요양병원일수록 비급여 항목인 1, 2인실과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 양질의 간병인 서비스 등이 마련돼 있고 의사 1명당 환자 수도 35명 이하로 적지만 그만큼 비용 역시 비싸다. 반면 수준이 낮은 병원은 8, 10, 12인실 등 다인실 병실만 갖춰 놓고 있고 의사 1명당 환자 수가 60명 이상인 경우도 있다. 요양병원 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정부 “4월까지 요양병원 전면 개편 윤곽 내놓겠다”

보건복지부는 돈을 벌기 위해 최소한의 치료와 간병만 하면서 입원 환자들을 사실상 방치하는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말 요양병원의 근본 시스템을 손질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암, 재활, 치매 전문 등 분야별 특화 요양병원으로 나누고 이에 맞는 수가와 급여 체계, 환자 기준 등을 전면 개편하겠다는 것. 이르면 4월 중 기본 윤곽을 내놓고, 수가 및 급여 조정 등은 연말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민간 전문가들과 회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해 왔고, 최근 요양병원 선진국인 일본 현장을 다녀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달 내 전국 요양병원 483곳을 대상으로 중간 점검에 나설 것”이라며 “2013년 요양병원으로 인증된 기관 중 첫 인증 시 평가 점수가 낮았던 곳,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있는 곳, 영세한 곳 등을 선정해 안전 시설 및 병실 내 감염 관리,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는지 등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지은 smiley@donga.com·조건희 기자
#요양병원#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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