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노조 10년새 5배로… 무르익는 제3노총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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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양대노총 시대’ 저무나]대법 “산별노조 탈퇴 가능” 파장

“노사는 2017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 노조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기초해 성실하게 협의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는 18, 19일 총투표를 통해 이런 내용의 합의안을 찬성 52.45%로 통과시켰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최고 강성인 금속노조 소속 대형 사업장 중에서 임금피크제에 합의한 것은 금호타이어를 포함해 현대삼호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세 곳에 불과하다”며 “현대자동차 노사는 지난해 12월 임금피크제에 합의했지만 ‘합의 후 시행’ 조건이 달렸기 때문에 형식적 합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합의문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점이 노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라면 노조 동의 없이도 가능하다는 지침을 냈고, 민노총은 이 지침이 위법하다며 강력 투쟁을 예고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개별 지회가 민노총 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합의안을 전격 수용한 것이다.

민노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는 지난해 8월 11일부터 41일간 (부분파업 6일 포함) 파업을 하는 등 임금피크제를 놓고 사측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동아일보DB
민노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는 지난해 8월 11일부터 41일간 (부분파업 6일 포함) 파업을 하는 등 임금피크제를 놓고 사측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동아일보DB
○ ‘강성 노조’ 금호타이어 임금피크제 수용

금호타이어 노사는 지난해 극심한 노사 갈등을 빚었다. 금호타이어지회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하며 41일간 파업(부분파업 포함)을 벌였다. 이처럼 민노총에서도 손꼽혔던 강성 노조가 상급단체 방침을 어긴 것은 최근 가속화되는 산별노조 이탈 현상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금호타이어지회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까지 수용해 파업기간 임금(1인당 449만 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개념을 수용한 것도 민노총 사업장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금호타이어처럼 민노총 지도부와 다른 노선을 걷는 노조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노총 사무금융노조 소속이었던 IBK투자증권 노조도 이달 초 ‘저성과자 해고’를 취업규칙에 반영키로 사측과 합의했다.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 2대 지침은 민노총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안. 민노총은 IBK투자증권 노조를 제명했지만, 지도부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민노총이 노동개혁에 맞서 지난해 세 차례 실시한 총파업도 현대차 등이 불참하면서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 제3지대 노조 크게 확장

이에 따라 1996년 11월 민노총 출범 이후 20년 넘게 이어진 ‘양대 노총’ 시대의 몰락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산별노조 지회나 지부의 기업별 노조 전환을 인정한 19일 대법원 판결로 양대 노총에서 탈퇴하는 것이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 이전부터 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제3지대’ 노조는 이미 확장세에 있었다. 21일 고용부에 따르면 2004년 8만9000명에 불과했던 미가맹 노조는 2014년 43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양대 노총의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낀 상당수 기업별 노조들이 상급단체가 주는 ‘당근’을 거부하고 제3지대에 남아 있는 것이다.

현재 상신브레이크(자동차 부품업체) 노조 등 10여 곳이 금속노조 탈퇴 소송을 진행 중이고,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광양지부처럼 전공노를 탈퇴하고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통공노)이나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으로 가려는 움직임도 있다. 공노총과 통공노는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미가맹 조직이다. 이에 전공노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광양지부의 조직변경 효력을 정지해 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18일 이를 기각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산별노조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민노총이 여론과 괴리된 운동을 해왔기 때문”이라며 “양대 노총에서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한 노조 가운데 상당수는 당분간 미가맹 노조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제3노총’ 건설 운동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견도 그런 맥락에서다. 2011년 민노총을 탈퇴한 서울메트로 노조를 중심으로 설립된 ‘국민노총’은 한때 2만 명까지 세를 불리기도 했지만, 양대 노총의 영향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지난해 한국노총으로 흡수됐다. 그러나 산별노조 지회, 지부의 기업별 노조 전환이 많아지면 양대 노총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제2, 제3의 ‘국민노총’이 설립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마련된 것이다.

○ 존립 근간 흔들리는 민노총

이제 민노총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 한상균 위원장의 구속으로 지도부는 사실상 공백 상태고, 핵심 산별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4만9000명)의 법외노조 관련 대법원 판결도 앞두고 있는 데다가 온건파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노동계를 대표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내셔널센터’(산별노조의 전국 중앙조직)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는 평가도 지배적이다.

그러나 민노총은 27일 서울광장에서 4차 민중총궐기를 개최하기로 했다. 다시 한 번 ‘투쟁’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전원합의체로 내려진 대법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도 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의 미래는 대외적 자주성과 대내적 민주성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외부 투쟁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민주적 운영 원칙 등 조직 내부의 혁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노조#노총#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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