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먹고 잘 쉬엉 밥순아^^”(한모 씨) “밥순이 아니라니까!”(여자친구 A 씨) “강한 부정은 인정하는거야”(한 씨) “아니라니까ㅠㅠ”(A 씨)
노래방을 운영하는 한모 씨(29)가 2012년 7월 14일 지적장애 3급인 여자친구 A 씨(28)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다. 둘은 10여일 전 친구를 찾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처음 만나 서로에게 반해 바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 씨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침이면 “굿모닝~^^♥”이라고 안부를 물을 만큼 달달했던 연애의 흔적이 헤어진 뒤 구세주 역할을 할 줄은….
● 짧았던 행복, 시작된 불행
한 씨는 A 씨와 사귄지 나흘째인 2012년 7월 7일 자기 노래방에서 A 씨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줬다. 둘은 밤늦게까지 노래방에서 함께 일하며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그러다 A 씨가 일주일 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자 한 씨는 급여로 20만 원을 줬다. 그래도 연애전선엔 이상이 없었다. 그 다음 날 한 씨가 “자기 나 보러 안 올겨?”라고 묻자 A 씨는 “시간될 때 보러갈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A 씨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 일주일 만에 노래방을 찾아와 “남자와 술 마시러 간다”고 말하자 한 씨는 “그 남자랑 술 마시러 갈거면 나랑 헤어져야 한다”고 역성을 냈다. 한 씨는 “그래, 헤어지자”며 떠났다. 둘은 그 이후 연락을 끊었지만 한 달여 뒤 A 씨가 산부인과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한 걸 계기로 다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 씨가 처음에 수술비를 주지 않자 A 씨는 아버지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고 중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는 한 씨 부탁에 따라 A 씨 아버지가 일부 부담했다.
한 씨는 그로부터 2년 뒤 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특례법 위반·장애인 위계 등 간음) 등으로 A 씨에게 고소당해 구속된 채 재판에 넘겨졌다. A 씨가 2년 뒤에 뒤늦게 전 남자친구였던 한 씨를 장애인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A 씨는 “노래방에서 한 씨가 ‘소원이니까 딱 한번만 하자’며 무릎을 꿇고 빌길래 계속 거절했는데 옷을 벗기며 화를 내 겁이 나 억지로 성관계를 했다”고 진술했다. 노래방에서 일한 일주일여 동안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한 씨는 한사코 혐의를 부인하며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 씨의 주장이 비교적 일관돼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한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신상정보를 5년 동안 공개·고지할 것도 함께 명령했다.
● 구세주, 문자메시지
성범죄자로 전락한 한 씨를 수렁에서 건져준 ‘동앗줄’은 A 씨와 연애하며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였다. 2심 법원은 A 씨가 노래방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일주일여 동안 한 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날 이후에도 며칠 동안 노래방에서 계속 일하며 연인 사이로 유추되는 문자메지시를 자주 주고받았고, 노래방 일을 그만 둔 후에도 ‘자기’라고 부르며 안부를 묻는 문자메시지가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채택됐다.
2심 법원은 A 씨가 임신 사실을 안 직후 한 씨에게 중절비용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거나, 아버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때도 한 씨의 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감안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어 장애인인 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 한 씨 주장도 A 씨 친구의 유사한 진술을 근거로 받아들였다. 한 씨는 2심 선고 직후 풀려났고,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한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 바람피우고 합의금 1억 원 요구한 여자친구의 진실
성범죄는 피해자의 인격까지 파괴할 수 있어 엄하게 처벌해야 할 중범죄다. 하지만 성범죄로 신고당하기만 해도 법원의 유무죄 판단과는 무관하게 ‘확신범’으로 낙인찍히는 또 다른 인격살인이 벌어지는 것도 현실이다. 성범죄자가 되면 아무리 경미한 죄를 저질렀다 해도 20년 동안 국가가 신상정보를 보관·관리하는데, 헌법재판소가 8월 모든 성범죄자에게 일괄적으로 20년 기한을 강제하는 건 헌법에 어긋나므로 내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감안된 것으로 분석된다.
성폭력사범을 주로 수사한 한 검사는 최근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취직한 사회초년생 B 씨 사건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B 씨는 여자친구가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여자친구 휴대전화 속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알게 됐다. 그는 홧김에 여자친구에게 “그 XX랑 ○○하니까 좋냐?”라는 식으로 성적 용어를 담은 욕설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는데, 여자친구가 “문자메시지를 보고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성폭력특례법 위반으로 고소하고 합의금으로 1억 원을 요구한 것이다.
성적 욕망을 유발할 목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이 드는 메시지를 보내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처벌의 강도도 중요하지만 B 씨에겐 처벌 자체가 생계를 좌우했다. B 씨 회사는 아무리 벌금형이라도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해고하는 게 원칙이었다. B 씨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와서 검사에게 4000만 원이 찍힌 통장을 내밀며 “제가 평생 모은 돈인데 이걸로 합의가 안 되겠습니까”라며 애원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검사가 B 씨 여자친구에게 합의 의사가 있는지 물었지만 “액수가 맞지 않는다”며 냉랭한 거절만 돌아왔다.
B 씨는 스스로 친 덫에 빠진 여자친구 덕에 처벌을 면했다. B 씨 여자친구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술을 마시자고 불러낸 뒤 만취한 척하며 모텔로 유인했다. 고소 건이 지지부진하자 확실한 증거를 만들 요량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B 씨는 만남 직후부터 녹음기를 켜놓고 모든 대화를 녹음했다. 여자친구는 모텔로 들어가 줄기차게 성관계를 요구했지만 B 씨는 한사코 거절했고, 대화 녹취록을 검찰에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B 씨가 성적 단어가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낸 건 맞지만 충분히 정상이 참작될 사안이라고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명예를 중히 여기는 전문직 고소득층은 성범죄 신고 이후 합의금을 요구하기 좋은 대상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과 자주 일하게 되는 의사들이 대상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런 여성들은 통상 회식자리에서 들었던 기분 나빴던 말이나 행동들을 기억해둔 뒤 금전 사정에 따라 추후 성추행 등으로 고소하는데, 합의금으로 수천만 원을 요구하는 게 다반사라는 것이다. 한 여성범죄 전문 법조인은 “전문직 고소득자들은 죄가 경미하더라도 성범죄로 고소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소문이 날까 겁 내 합의금을 주고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하려 한다”며 “이런 심리적 취약점을 노려 극히 사소한 걸로 고소하고 합의금을 받아내려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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