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휴업’ 서울 강남-서초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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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2차 확산/10대 환자 발생]
맞벌이 자녀위한 ‘돌봄교실’도 텅텅… 갈곳없는 아이들 PC방에 모여 게임

메르스 확산으로 서울 강남, 서초지역의 모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강제휴업이 시작된 8일 오전.

강남구에 위치한 A초등학교는 교문을 지키는 학교보안관과 몇몇 교사만 출근해 교무실에 있을 뿐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학교는 폐쇄하는 휴교가 아니라 수업만 진행하지 않는 휴업이기 때문에 돌봄교실 등은 이용할 수 있지만 등교한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학교 교장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1학년 학생 3명이 돌봄교실에 오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아침에 오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10일까지 강제휴업 기간인데 아마 거의 오는 학생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교생이 700여 명인 이 학교는 평소 90여 명이 방과후 돌봄교실에 참여한다. 학교 측은 맞벌이 가정을 중심으로 최소 10여 명은 등교해서 독서실이나 돌봄교실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메르스 불안감에 극히 예민해진 학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이 학교 교감은 “학부모들 대부분이 아이를 할아버지나 친척 집에 보낸 걸로 알고 있다”며 “부득이한 경우 엄마가 직장에 며칠 휴가를 내고 자녀를 돌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A초교는 이날 오후 세균방역업체를 불러 학교 교실 등을 일제히 소독했다. 교직원들도 알코올로 교실 문 손잡이, 책걸상 등을 구석구석 닦았다.

교사들이 전하는 서울 강남지역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A초교 옆에 있는 부설유치원도 이날 원생 8, 9명 정도가 등원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오지 않았다. A초교 인근에서 만난 한 아파트 주민은 “이웃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는 학부모들이 여기보다 잘사는 편인데, 아이들을 아예 외국에 보낸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지하철 대치역을 중심으로 입주한 초등학생 대상 어학원, 보습학원에는 ‘8∼10일 학원 쉽니다’란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에 문을 연 한 학원 관계자는 “전화 상담을 하거나 미처 휴업 사실을 모르는 학부모들에게 이를 알려주기 위해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어학원 원장은 “7일 서울시교육청이 휴업령을 내리는 바람에 급하게 강사들과 회의를 열고 휴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초등학교 6학년 김모 군(12)은 “심심해서 친구들을 불렀는데 집에서 못 나가게 한다고 했다”며 “대부분 밖에 못 나오고 집에만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에서 자전거를 타던 초등학교 6학년 이모 군(12)은 “지난주 금요일에도 학교를 쉬었는데 종일 집에서 혼자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TV를 봤다”며 “심심해서 자전거를 타러 나왔는데 친구들도 없고 갈 곳도 없다”고 말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이 군의 엄마에게서는 “마스크를 쓰고 나갔냐”고 묻는 확인 전화가 걸려 왔다.

고등학교는 휴업 대상이 아니지만 부모의 만류로 학교에 결석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대치동 PC방에서 만난 고등학교 2학년 황모 군(17)은 “우리 학교는 정상 수업인데 엄마가 등교를 막아 학교에 안 갔다”고 말했다. 황 군은 “의사인 아버지도 당분간은 학교에 가지 않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게 좋겠다며 엄마의 결정을 따랐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8일 현재 전국의 휴업 학교는 6개 시도에 총 1970곳이다.

이은택 nabi@donga.com·임현석 기자
#강제휴업#메르스#돌봄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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