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재민]불법어로 국가 명단에서 빠졌다고 안심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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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요한 고비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4월 22일 유럽연합(EU)이 불법어로(IUU·Illegal, Unreported, Unregulated) 조장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기로 결정한 것이다. 2월 초 미국이 동일한 취지의 자국 리스트에서 한국을 뺀 이래 연이어 들려오는 반가운 소식이다.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는 불법어로를 세계 어족자원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중심으로 규제를 강화해 오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편승해 2008년 들어 미국과 EU는 각각 새로운 국내법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국내법의 핵심은 불법어로가 만연하거나 불법어로 퇴치 노력이 부족한 국가들을 확인해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 공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리스트에 오른 국가에 대해 2년의 시간을 주고, 이 기간 동안 충분한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수산물 수입 제한, 기항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고강도의 제재 조치를 부과하는 것이다. 2013년 이들 두 국가의 리스트에 포함된 한국은 이번에 여기에서 빠지지 않았다면 곧바로 이러한 제재 조치에 직면하였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제재 조치가 한국에 발동됐다면 그 부정적 파급 효과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과 EU 시장으로의 수산물 수출 제한에 따른 경제적 타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 국적 선박의 기항 금지 조치로 인한 유·무형의 부담은 계산하기조차 곤란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신에 심각한 타격이 초래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국가 중 미국과 EU의 리스트에 포함된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이들 리스트에 포함된 대부분의 국가는 아시아·아프리카의 소규모 조업국가들이다. 교역규모 세계 9위의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인 한국이 이 리스트에 오른다는 것이 우리의 국제적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결과임은 물론이다.

이 문제가 대두된 2013년 이후 지난 2년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회와 정부는 전방위적 노력을 경주했다. 외교부·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는 우리 수산업계와 힘을 합해 다양한 경로로 이들 두 국가에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진행했다. 국회도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며 원양산업발전법을 두 차례나 개정하는 등 앞장서서 정부의 노력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개정 작업의 핵심은 모든 어선에 선박추적장치(VMS) 부착을 의무화하고 주요 항만에 조업감시센터(FMC)를 확대하는 등 불법조업 규제를 강화하고 불법어로 활동에 종사하는 선박에 대한 처벌도 국제 수준에 맞춰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속한 대응이 최악의 상황을 피해 나가는 데 주효했다. 다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난 2년의 노력은 중요한 국제 현안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긴밀한 협조, 나아가 국회의 신속한 의견 수렴과 입법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일단 한 고비는 넘겼으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미국과 EU는 앞으로 한국의 이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등 국제 비정부기구(NGO)와 여러 국제수산기구들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다. 나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현재 논의 중인 일부 통상협정에서는 불법어로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조항을 포함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간파해 이 문제가 다시는 우리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시점이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불법어로#EU#VMS#F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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