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휴대전화 금지’ 지시가 고립 자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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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최후 부른 ‘비밀주의의 덫’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은신한 전남 순천시의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발견된 여행용 가방.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은신한 전남 순천시의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발견된 여행용 가방.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4월 23일 오후 9시경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사망)은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알고 황급히 경기 안성시 금수원을 빠져나왔다. 이후 5월 3일 오후 11시경 안성을 벗어나 이튿날 오전 3시 전남 순천시 서면 ‘숲속의 추억’ 별장으로 숨어들었다.

유 전 회장은 5월 10일 운전사 양회정 씨(56·수배 중), ‘김엄마’로 불리던 김명숙 씨(59·여·수배 중), 전남지역 구원파 대표적 신도 추모 씨(61·구속)에게 장기 은신에 필요한 물품을 부탁했다. 양 씨 등은 금수원에서 마른 사과 등 먹을거리, 현금이 든 가방 2개 등을 승합차에 실어 숲속의 추억으로 가져왔다.

현금 약 20억 원이 들어있는 가방 2개는 길이 1m 남짓한 크기에 손잡이 부분에 4, 5번이라는 숫자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유 전 회장의 여비서 신모 씨(33·여·구속)는 유 전 회장의 지시를 받아 김엄마와 양 씨에게 약 3억 원씩, 추 씨에게는 약 2억 원을 건넸다. 이 돈으로 김엄마와 양 씨는 강원도에서 제2의 은신처 물색에 나섰고, 추 씨는 5월 19일 별장 인근의 집이 딸린 땅을 2억5800만 원에 매입했다.

신 씨는 추 씨가 땅을 매입한 직후 별장 2층의 통나무 벽장 안에 현금 8억3000만 원과 16만 달러(약 1억6500만 원)가 남아있던 가방 2개를 숨겼다. 4, 5번의 숫자가 붙은 가방 2개가 나중에 발견되면서 1, 2, 3번이 붙은 또 다른 돈가방이 있다는 추측과 함께 이 돈을 노린 타살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검경은 1, 2번은 옷가지가 담긴 가방, 3번은 먹을거리가 담긴 가방, 4, 5번은 돈가방으로 분류해 도피 시 헷갈리지 않게 해놨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금수원 등 다른 장소에 또 다른 돈가방이 더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유 전 회장은 5월 25일 오후 9시경 검찰이 별장을 급습했을 때 함께 있던 여비서 신 씨에게 “나무 벽장에 같이 숨자”고 했지만 신 씨는 “혼자 숨어 계시라”며 유 전 회장을 통나무 벽장으로 밀어 넣었다고 한다. 빈 몸으로 숨은 유 전 회장은 통나무 벽장 안에서 잠금장치를 걸었고 신 씨는 밖에서 소파로 입구를 가렸다. 신 씨는 별장에서 검거됐지만 통나무 벽 비밀공간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겨 수사에 큰 혼선을 줬다.

더욱이 검찰은 미국 시민권자인 신 씨가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허위진술을 한 것에 철저히 농락당했다. 신 씨는 검거 당시 영어로 “미국대사관 관계자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말하지 않겠다”고 버티다 이후 “별장에 계속 혼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5월 28일 갑자기 한국말로 “유 전 회장과 함께 있었는데 자다가 눈을 떠보니 유 전 회장이 어떤 남자랑 얘기하고 있었고, 깨어보니 둘 다 사라졌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은 이 말을 믿고 한동안 엉뚱한 곳에서 수색작업을 벌였다.

유 전 회장은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최측근 8명에게만 은신처를 알려준 탓에 홀로 도망을 쳐야 할 상황에 놓였다. 결국 6월 12일 숲속의 추억에서 2.5km 떨어진 매실밭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신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변시체 사진에 나온 신발, 내복, 점퍼, 스쿠알렌 등은 유 전 회장 것이 맞다. 유 전 회장을 살해할 사람은 (측근 중에는) 없지만 사망한 원인은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유병언#유병언 돈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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