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임형주의 뮤직 다이어리]인간의 희로애락 ‘낭만주의 음악’으로 표현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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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음악의 역사

프라하 블타바 강의 한 다리 위에 있는 체코의 국민음악가 스메타나의 동상. 뒤로 카를 대교와 더불어 멀리 언덕 위에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이 보인다. 동아일보DB
프라하 블타바 강의 한 다리 위에 있는 체코의 국민음악가 스메타나의 동상. 뒤로 카를 대교와 더불어 멀리 언덕 위에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이 보인다. 동아일보DB
자∼ 여러분!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 서양 고전음악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두 번째 시간을 가져 볼까 합니다!

⑥ 낭만주의 음악

임형주 팝페라테너
임형주 팝페라테너
‘고전파 음악’에 바통을 이어받은 ‘낭만주의 음악’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입니다. 19세기 초까지 이어진 ‘산업혁명’은 전 세계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중산층과 평민은 각각 어느 정도의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었으며,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는 점차 귀족사회 같은 계급사회에서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시점이었지요. 그리하여 왕이나 귀족들 말고도 많은 일반인도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었답니다. 우아함으로 대변되는 고전파 음악에서 한 단계 더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였던 낭만주의 음악은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기쁨, 슬픔 등 인간 본연의 감성과 감정을 표현하며 빠른 속도로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요.

또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등 수많은 분야의 악기들이 연주하기 편하도록 개량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목관악기는 키 작동법이 생겨나 이전보다 연주자가 더욱 쉽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금관악기는 밸브가 생기는 등의 뛰어난 발전을 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다양한 악기를 위한 솔로 연주곡들이 생겨나고 교향곡 역시 고전파 음악 시대보다 규모가 더욱더 크고 웅장한 음악이 넘쳐나기 시작했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전파 음악 시대에는 관현악단 혹은 오케스트라의 최대 편성이 15∼30인조의 ‘체임버’ 수준이었다면 낭만주의 음악 시대에는 각각의 악기들의 고른 발달과 악기 주법의 완벽한 정립으로 인하여 60∼100인조 이상의 ‘심포니’ ‘필하모닉’이 관현악단의 최대 편성이 되었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이때부터 관현악단의 ‘스펙터클’한 거대한 사운드를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답니다.

한편 낭만주의 음악의 ‘스타 작곡가’들은 오늘날까지도 큰 인기와 사랑을 얻고 있는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오스트리아·1797∼1828), 펠릭스 멘델스존(독일·1809∼1847), 로베르트 슈만(독일·1810∼1856), 프레데리크 쇼팽(폴란드·1810∼1849), 프란츠 리스트(헝가리·1811∼1886), 요하네스 브람스(독일·1833∼1897)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국민악파 음악(민족주의 음악)

19세기 후반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특히 프랑스에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유와 평등 정신을 설파하는 ‘국민주의 운동’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향은 서양 고전음악에도 나타나게 되었지요. 바로 이러한 음악을 ‘국민악파 음악’ 혹은 ‘민족주의 음악’이라고 부른답니다. 국민악파 음악(민족주의 음악)의 출발은 러시아였습니다. 당시 전 세계의 작곡가들은 자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 음악 스타일과 민족의 전래 음악 혹은 민요 등에서 새로운 소재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였지요.

국민악파 음악(민족주의 음악)의 대표주자들은 바로 이 장르를 탄생시킨 주역들로 평가받는 ‘러시아 5인조 음악가’ 발라키레프, 무소륵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퀴를 꼽을 수 있으며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체코·1824∼1884),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러시아·1840∼1893), 안토닌 드보르자크(체코·1841∼1904), 등도 국민악파 음악(민족주의 음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들입니다.

근대음악

서양 고전음악의 역사 중에서 가장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근대음악’은 대체로 19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과 20세기 초의 20년 동안을 합친 30년에 이르는 동안 유행했던 음악 장르를 말하는 거랍니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전 세계가 크나큰 아픔을 겪을 동안 아름다운 선율을 바탕으로 한 근대음악은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위로를 선사하기도 했는데요. 어찌 보면 급변하는 사회가 낯설게 된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아픔을 달래주는 ‘힐링’ 그 자체였던 것이지요.

특히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작곡가 드뷔시는 그 당시 예술 전반에 걸쳐 인기를 끌고 있던 ‘인상파주의’를 음악에 녹여 내었는데요. 즉, ‘인상파 미술’의 창시자가 클로드 모네라면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는 드뷔시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드뷔시를 필두로 에리크 사티(프랑스·1866∼1926), 모리스 조제프 라벨(프랑스·1875∼1937) 등을 근대음악의 대표적 음악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⑨ 현대음악


‘현대음악’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세기의 음악 전체와 오늘날의 서양 고전음악까지도 포괄하는 음악 장르를 일컫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현재 진행형’ 음악 장르인 것입니다. 20세기 당시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지나 전 세계는 빠르게 변화했어요. 이와 더불어 인류문명은 의학과 과학의 급속한 발달로 인하여 현재와 같은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현대음악은 예전 서양 고전음악의 다른 음악 장르들보다 더더욱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을 선사했습니다. 단, 현대음악은 음악 자체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아름다운 선율과 가락, 그리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서양 고전음악이 갖고 있는 큰 특징 중 하나인 고유의 정통성과 본질적 우아함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도 존재하는데요. 앞으로 현대음악의 남겨진 숙제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가들로는 아널드 쇤베르크(오스트리아·1874∼1951),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러시아·1882∼1971), 알반 베르크(오스트리아·1885∼1935),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러시아·1891∼1953),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러시아·1906∼1975), 올리비에 메시앙(프랑스·1908∼1992), 존 케이지(미국·1912∼1992) 등을 꼽을 수 있으며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작곡가 윤이상 선생(대한민국&독일·1917∼1995)도 여기에 포함된답니다.

여러분! 지난 1편과 이번 2편에 걸쳐 서양 고전음악 역사에 대해 나름 자세하게 알아보았는데요. 다들 즐거우셨나요? 그동안 서양 고전음악 하면 ‘고전파 음악’인 ‘클래식 음악’만 생각하셨던 분이 많으셨을 텐데 오늘부터는 서양 고전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임형주 팝페라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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