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로봇 물고기를 기억하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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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수질 파수꾼이라더니… 담당부서 없어지고 길 잃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최근 개발한 로봇 물고기 익투스V5.5 시험용 모델. 익투스 초기모델의 성능을 10회 이상 개선해 자유 유영은 물론이고 장애물 감지센서, 수질 측정 기능, GPS, 무선카메라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돼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공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최근 개발한 로봇 물고기 익투스V5.5 시험용 모델. 익투스 초기모델의 성능을 10회 이상 개선해 자유 유영은 물론이고 장애물 감지센서, 수질 측정 기능, GPS, 무선카메라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돼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공
“이건 낚시를 해도 물지 않습니다.”

2009년 11월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자료 화면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의 유머에 대화 참석자들과 시청자들도 미소를 지었다. “물고기처럼 생긴 로봇인데 평소엔 다른 고기와 같이 놀면서 강물을 타고 다니다가 수질이 나쁘면 중앙센터에 바로 보고합니다.”

이 전 대통령 뒤편 동영상에는 모형 물고기가 파란 물속을 휘젓고 다니는 가운데 ‘수중 생태계 감시’ ‘오염원 추적’ ‘보호어종 감시’ 등의 문구가 ‘팝업’처럼 튀어 올랐다. ‘4대강 로봇 물고기’가 국민 앞에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은 “이 로봇 물고기를 4대강에 운용해 2중, 3중으로 수질을 확보할 수 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녹색성장의 기수로 보고 있다”며 웃었다.

로봇 물고기는 이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취임 직후부터 추진한 4대강 사업이 환경오염 논란에 휩싸이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로봇 물고기의 등장에 여당 의원들은 “로봇 물고기가 빨리 상용화될 수 있도록 정부 예산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몇 달 뒤 청와대는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1년 10, 11월쯤 로봇 물고기를 풀어 넣겠다”며 시기까지 못 박았다.

그 후 약 4년이 지났다. 로봇 물고기는 지금 어디서 헤엄치고 있을까?

로봇 물고기 개발 임무를 부여받았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21일 취재팀에 “4대강 로봇 물고기 개발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로봇 물고기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동안 많이 당했으니 이젠 그만하자”며 손사래를 쳤다. “순수하게 로봇 연구에 집중하려는 과학자들이 많은 피해를 봤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국정감사 때마다 불려 다니고….”

당시 로봇 물고기 개발을 주도했던 지식경제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역시 “4대강 로봇 물고기 투입 계획에 대해 논의된 게 없고 그 업무를 맡는 부서도 없다”고 밝혔다. 4대강 수질관리 담당 부처인 환경부도 “로봇 물고기 도입과 관련한 문제는 원래 우리 업무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4대강이 완공된 지는 1년 반이 지났지만 로봇 물고기는 ‘도시락 폭탄’ 신세처럼 되어버렸다. 관련 부처와 기관들은 너도나도 거리두기를 하면서 “우린 모른다”고 한다. 4대강 수질관리 파수꾼으로 주목받았던 로봇 물고기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쟁 표적’이 돼버린 신기술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2009년 부산 벡스코에 선보인 익투스V3. 자유 유영이 가능한 국내 첫 로봇 물고기.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2009년 부산 벡스코에 선보인 익투스V3. 자유 유영이 가능한 국내 첫 로봇 물고기.
로봇 물고기는 실제로 선진국에서 주목받는 첨단 과학기술이다. 물고기 모양의 로봇이 헤엄을 치는 동안 센서를 통해 수질을 측정한 뒤 자동 전송하면 오염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수중 생태계 변화를 관측하거나 오염물질 무단투기 등 불법행위도 감시한다. 이 때문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버지니아공대, 영국 에섹스대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오래전부터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개발한 ‘고스트 스위머’는 해양 감시 등 군사작전에 쓰이고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해저탐사에 투입될 정도로 활용 범위가 넓다.

그러나 국내에선 일반에 생소했던 로봇 물고기가 ‘4대강용’으로 전격 등장하면서 출발부터 과학기술이 아닌 정쟁의 대상이 됐다. 야당한테는 이 전 대통령이 4대강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대책도 없이 꺼내든 전시 행정의 상징물로 낙인찍혔고 연구예산 확보 문제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2010년 지식경제부는 로봇 물고기 연구개발 사업비 명목으로 예산 250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심사 과정에서 ‘시급하지 않은 사업’으로 분류돼 전액 삭감됐다. 지경부는 그해 12월 국회에 “수중로봇은 2007년부터 개발해 왔고 마침 4대강이 있어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 뿐 4대강 사업과 관련이 없다”며 당초 액수보다 크게 줄인 연간 20억 원을 예산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민주당 정범구 의원이 “4대강 홍보영상에서 로봇 물고기를 보면서 논란이 일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자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은 “로봇시대인데 하필 4대강을 넣는 바람에…. 로봇은 계속 개발하고 앞으로 4대강에 집어넣지 말라”며 절충을 시도했다. 결국 국회 계수조정위원회는 연간 20억 원씩 총 3년간 예산 60억 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4대강에 안 넣는 조건으로 로봇 물고기 개발을 지원한다는 게 정부와 국회의 합의안이었으니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서 한 공언은 1년여 만에 공염불이 된 셈이다. 이 망신스러운 결말은 이 전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었다.

청와대의 탁상공론


(왼쪽부터) 수중자원 탐사를 목적으로 미국 노스이스턴대 연구팀이 개발한 바닷가재로봇. 미국 버지니아공대가 개발한 해파리로봇 사이로. 위장이 용이하고 에너지 효율이 좋다. 영국 에섹스대가 2005년 개발한 피시봇. 스스로 유영이 가능한 세계 첫 지능형 로봇 물고기.
(왼쪽부터) 수중자원 탐사를 목적으로 미국 노스이스턴대 연구팀이 개발한 바닷가재로봇. 미국 버지니아공대가 개발한 해파리로봇 사이로. 위장이 용이하고 에너지 효율이 좋다. 영국 에섹스대가 2005년 개발한 피시봇. 스스로 유영이 가능한 세계 첫 지능형 로봇 물고기.
이 전 대통령은 로봇 물고기 얘기를 꺼낸 2009년 ‘국민과의 대화’ 몇 달 뒤 청와대에서 참모들과 로봇 물고기 개발 방안을 상의했다.

“수질 측정과 정보 전송 기능을 두루 갖추려면 로봇 크기가 최소 1m 이상 됩니다.”(참모)

“그러면 너무 커서 다른 물고기들이 놀랍니다. 크기를 줄여야 해요.”(이 전 대통령)

“첨단 복합기술이 많이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크기를 줄이는 건 어렵습니다.”(참모)

“기능을 나눠서 여러 마리가 같이 다니게 하면 되지 않나요.”(이 전 대통령)

4대강 로봇 물고기의 크기가 45cm 정도로 줄고 3∼5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편대유영’ 방식이 고안된 건 이런 논의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당시 우리나라에는 수질측정센서를 물고기에 부착해 수질을 감시하는 시스템과 본부와 통신하는 등의 원천기술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 로봇 물고기를 상용화하려면 ‘로봇 플랫폼 설계 제작’ ‘자율 유영 충전기술’ ‘수중 유영기술’ ‘수중 위치인식 및 통신기술’ 등 7가지 원천기술이 필요하지만 당시로선 제대로 갖춘 게 없었다.

고작 2년 내에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고 물고기 크기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부족한 탁상공론이었다. 민주당은 “로봇 물고기 속도가 2, 3노트 정도에 이동거리도 7∼11km 수준에 불과한데 영산강의 홍수 때 평균 유속이 5.2노트여서 물살에 떠내려갈 게 뻔하다”며 “기술력은 없는데 홍보부터 하고 보는 과장 홍보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2010년 10월 ‘정보기술(IT) 한국의 현실과 전망’ 보고서에서 “정부 지시로 개발 중인 로봇 물고기는 사업 타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여기에 로봇 물고기 한 마리에 2500만 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알려지면서 “4대강 사업에 혈세 22조 원을 쓰는 것도 모자라 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자는 것이냐”는 비난도 이어졌다.

정부 부처도 ‘4대강’ 발 빼기

2010년 12월 이만의 당시 환경부 장관은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로봇 물고기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며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이미 환경부 차원에서 4대강 수질을 점검하기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초적인 수준의 수질 측정에 그치는 로봇 물고기를 투입해봐야 별 보탬이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지경부가 “수중로봇 개발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어 이르면 2011년 10월부터 4대강에 로봇 물고기를 유영시킬 계획”이라고 밝힌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이 전 장관의 이 발언 직후 한 언론에서 “환경부가 4대강 로봇 물고기에서 손을 빼려 한다”고 보도하자 환경부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로봇 물고기 관련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4대강 수질 측정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감사원은 7월 “4대강 사업 전반이 졸속 추진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환경부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4대강용 로봇 물고기가 개발됐다는 얘기도 못 들어봤고, 설사 개발된다고 해도 4대강에 넣을지 말지는 다른 정부 부처나 개별 지방자치단체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우리와는 무관한 업무”라고 밝혔다.

2010년 당시엔 청와대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로봇 물고기 사업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이제는 지난 정부와 선긋기를 시도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6일 국무회의에서 “낙동강 녹조 현상은 4대강 사업이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보고한 것이나, 환경부 간부들에게 “4대강 수질조사가 진행 중이니 낙동강 녹조를 인위적으로 없애지 말고 그대로 놔두라”고 지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갈 곳 잃은 로봇 물고기


정치권과 정부 부처 간에 ‘4대강 로봇 물고기’ 논란이 진행되는 사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예산 60억 원을 배정받아 나름대로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연구원은 환경감시 기능을 갖춘 로봇 물고기 개발 프로젝트가 마무리됐고, 현재 시제품 ‘익투스 V5.5’에 대한 평가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 위치 인식 시스템과 전파통신 기능을 갖췄고 수질 감지 센서와 초음파 장애물 감지 센서도 구현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대강에 투입하기 위한 목적은 결코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연구원은 ‘4대강용’이란 시선을 피하기 위해 프로젝트 이름에서 ‘생태 모니터링’이란 표현을 배제하고 ‘생체 모방형 수중로봇’이라고 정했다.

류영선 수중로봇개발단장은 “로봇 물고기 연구는 (4대강 논의와 무관하게) 이미 2007년에 시작했던 것이고 최근 원천기술이 상당수 개발돼 해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수질감시 기능까지 연구에 포함시킨 건 개발 프로젝트에서 제시된 미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젠 4대강용 로봇을 만드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류 단장은 “다만 로봇 물고기를 4대강에 투입한다는 정책적 결정이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라 지금으로선 4대강에 쓸 로봇 물고기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했다. 연구원은 4대강에 로봇 물고기를 투입한다는 결정이 내려져 상용화를 시도한다면 2009년 당시 마리당 2500만 원으로 알려졌던 개발비용도 500만 원 선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4대강에 로봇 물고기를 투입할 계획이 없는 상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 업무를 맡았던 지경부 로봇산업과가 새 정부 개편 과정에서 사라져버려 관련 계획을 세우고 진행할 부서 자체가 없다. 해당 업무를 넘겨받은 미래부는 생산기술연구원 등 로봇 물고기 개발기관의 예산 집행 관리만 맡고 있다. 4대강 로봇 물고기 개발뿐 아니라 투입 계획까지 세워놨던 정부가 새 정권이 들어서자 완전히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새 정부 들어 4대강 사업 전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로봇 물고기 도입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분위기다. 결국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된 4대강 로봇 물고기는 소모적 논란만 일으키고 실체 없이 사라지게 됐다.

“정치가 과학 지배하면 국민 피해”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었다. 로봇 물고기를 선도적으로 개발해 상품화해온 한 중소기업은 4대강 로봇 물고기가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판로가 막혀 결국 도산했다. 로봇벤처기업인 SRC는 2012년 여수엑스포에 로봇 물고기 ‘피로(FIRO)’를 선보여 주목을 끌었지만 로봇 물고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엑스포 흥행 실패 등이 겹쳐 난관에 봉착했다. 서영주 대표는 “정부가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만 로봇 물고기 연구 예산을 집중하다 보니 수중로봇을 개발하는 민간 기관이나 대학은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국방부가 소형 로봇 개발을 추진하면서 로봇 물고기 부분을 제외시킨 것에 대해서도 수중로봇 관련 학계에선 “4대강 관련 연구과제에 예산을 투입할 경우 야당과 여론의 반발이 우려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수중로봇 전문가인 김종환 KAIST 전자전산학과 교수는 “호주의 경우 호수 수질 관리를 위해 감지 센서가 달린 무인 보트를 이용해 큰 효과를 보고 있는데 로봇 물고기를 쓰는 게 나을지 보트가 나을지는 정치가 아닌 공학적인 관점에서 결정해야 한다”며 “과학이 정치에 이용되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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