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자 주문에 226자 엉터리 답안 내고 합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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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장학사 시험비리 6명 구속… 채점위원 반대에도 “교육감 지시” 강행
출제위원은 숨긴 휴대전화로 문제 유출… 면접문제 볼펜 속에 숨겨 전달하기도

지난해 발생한 충남 장학사 시험의 부정은 복마전의 극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7월 18일 충남 공주시 충남도교육연수원에서 치러진 충남교육청 제24기 초등 장학사(교육전문직) 공개 전형 논술시험의 3교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그동안 추진해온 충남교육청의 충남학력 New 프로젝트의 성과를 지속하고 미래 핵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보고서를 교육 정책 의사결정 모형을 동원해 작성하라.’ 문제의 글자 수는 222자. 답안은 1200자 내외로 작성하라는 주문이 곁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이모 교사가 낸 답안의 글자 수는 226자에 불과했다. 문제보다 4자 많았고 주문한 답안 분량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형식도 논술형이 아니었다. 정책명, 정책기간, 정책목표 등의 항목을 번호 순서대로 적은 뒤 한 줄 정도 설명했다. 모든 문장은 명사형 어미로 끝났다. 내용 어디에도 교육정책 의사결정 모형을 통해 설명한 대목은 없었다.

충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 교사는 논술 6문제 가운데 2문제를 이같이 허술하게 작성했지만 합격점을 받았다. 충남교육청 인사담당 안모 장학관(58)으로부터 이 교사를 합격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채점위원이 채점을 하다가 “거의 백지 답안 수준이다. 도저히 합격시킬 수 없다”고 안 장학관에게 전화를 걸어 호소했다. 하지만 안 장학관은 “(김종성) 교육감의 지시다. 그 사람은 꼭 합격시켜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장학사 시험을 준비하지 않았던 응시자들은 시험 문제를 이틀 전에 알았지만 이처럼 엉터리 답안을 써냈다”며 “중등 5명과 초등 3명 등 채점위원 8명이 서로 교차 채점을 해야 했는데 그런 원칙마저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제 관리도 엉망이었다. 출제를 위해 합숙소에 격리된 출제위원들이 몰래 휴대전화를 숨겨 가지고 들어가 출제가 끝나자마자 문자로 문제를 유출했다. 면접 문제도 면접 당일 볼펜 속에 숨겨 전달하기도 했다.

경찰은 6일 이 같은 내용의 충남교육청 장학사 시험 비리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김 교육감의 차기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한 것으로 결론짓고 연루된 46명 가운데 김 교육감 등 6명을 구속하고 39명을 불구속했으며 1명을 수사 중이다.

장학사 시험 비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 장학사(구속)는 교사들로부터 모두 3억8000만 원을 받았다. 김 장학사는 김 교육감 지시로 이 돈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학사는 김 교육감이 2010년 10월과 2011년 4월 딸과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축의금으로 받은 5억6000만 원 가운데 2억 원을 맡길 정도로 교육감의 자금 관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충남교육청 일반직 4, 5급 승진과 세종시교육청 전출 과정에서도 1인당 1000만∼2000만 원씩이 뇌물로 건네졌다는 추가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충남 장학사#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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