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성당에 소속된 이모 수녀는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올케에게 이런 하소연을 건넸다. 성당에 새로 들어오는 수녀가 없어 업무가 원활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봉사활동이나 본당 행정업무를 60대인 이 수녀가 다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A 수녀회 관계자는 21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수녀 지원자는 감소하고 있다”라며 걱정했다. 한 수녀회 관계자는 “우리 수녀회의 경우 최근 수년째 지원자가 없다”라고 우려했다.
가톨릭이 먼저 발달한 유럽 등 국가에서 나타났던 ‘젊은 수녀 감소 현상’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수녀 선발과 생활을 관리하는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장상연합회)’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신규 수녀 지원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00년 318명이던 수녀 지원자는 2012년 말 기준 112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 신자는 느는데 수녀 지원자는 급감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1995년부터 10년간 국내 가톨릭 인구는 219만여 명이 늘었다. 가톨릭 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수녀 지원자가 줄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가족 구성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최혜영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수녀)는 “개방적인 사회가 될수록 수도자를 지원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진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소비력이 높아지고, 자아실현의 통로도 다양해진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이런 즐거움을 포기하고 수도자의 삶을 택하기를 꺼린다는 분석이다.
출산율 저하가 신규 수녀 감소 현상에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 수녀 지원자 318명→112명 급감… “부모 기피도 원인” ▼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자녀 중 한 명이 성직자가 되는 것을 신앙생활의 큰 영예로 여겼다. 자녀가 결혼, 가정 등을 포기하는 건 가슴 아프지만 더 큰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 가정에서 자녀를 한두 명만 낳다 보니 자식을 성직자로 내어주려는 부모가 줄어들었다는 게 장상연합회 관계자의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녀 지원자를 늘리기 위한 홍보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명륜동 A 선교회 소속의 한 수녀는 “주로 청소년 기도모임을 찾아다니며 수녀의 삶을 알린다”라고 말했다. 대학교 가톨릭 동아리를 방문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하루 동안 수녀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원자 모집에 나서기도 한다.
○ 수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은 많은데…
장상연합회 관계자는 “젊은 수녀들이 줄어들면 제일 먼저 성당 본당 업무가 타격을 받는다”라면서 “사회사업 인력도 모자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녀는 수도생활을 하면서도 그 시대에 필요한 사회사업을 담당한다. 1960, 70년대에는 고아가 많아서 보육원 운영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미혼모와 노인 보호에 집중하는 편이다.
수녀들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집 운영에도 많은 도움을 줘 왔다. 장상연합회 측은 “예전에는 수녀 지원자 중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을 가진 젊은이들이 교육을 담당했는데 지금은 신규 수녀 자체가 줄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성 수도자 감소는 가톨릭만의 현상은 아니다. 김정우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장은 “최근 대부분의 종교계에서 성직자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가치를 외면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녀 지원자 감소 현상에 대한 수녀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한 수녀는 “가톨릭 신자는 늘어나는데도 수도생활을 택하는 젊은이가 급감하는 것은 사회가 물질만능주의와 쾌락주의에 젖어 가면서 순결한 삶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된 탓”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한 수녀는 “나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의료 사도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명을 이어 갈 수녀가 줄어들면 병원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조모 수녀(47)는 “원래는 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수녀들이 그 사각지대를 맡아 왔던 것뿐”이라며 “예전에는 가톨릭 병원 등에 수녀가 많이 투입되었지만 지금은 전문성을 갖춘 일반인이 많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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