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선발 ‘꼼수’… 선착순 막았더니 동시에 추첨 ‘담합’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 추첨제 도입 취지 무색

네 살짜리 아들을 둔 직장인 A 씨. 내년부터는 유치원이 원아모집 때 반드시 추첨을 해야 한다는 뉴스를 듣고 반가웠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언니가 2년 전 조카를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온 가족을 동원해 이틀간 줄을 서게 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동네 유치원 서너 곳에 지원하면 한 곳 정도는 당첨되겠지’라고 A 씨는 생각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주 세 곳의 입학설명회에 갔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추첨 날짜와 시간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같았다. 한 곳은 당첨되는 즉시 계약금으로 24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유치원에 가도 돌려주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유치원 입학 과열 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겠다며 2013학년도부터 원아모집 방침을 바꾸자 유치원들은 꼼수로 맞서고 있다. 추첨제를 의무화하자 인근 유치원끼리 추첨일을 담합한다. 또 입학도 하기 전에 미리 돈을 내게 한다.

추첨제를 통해 유치원 지원과 선발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한다는 것이 교과부의 계획이었다. 일부 인기 있는 유치원이 알음알음으로 신입생을 뽑거나, 며칠씩 줄을 서서 대기표를 뽑게 하는 문제를 없애자는 취지. 유치원이 행정에 부담이 된다며 여러 곳에 지원한 학생은 자동으로 탈락시켜 버리는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을 참이었다.

하지만 교과부의 구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추첨일과 시간을 담합했다. 그뿐 아니다. 추첨장에 아이를 반드시 데리고 오게 했다. 복수 지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내년에 유치원에 가는 연령대의 아이들은 135만 명인데 수용인원은 70만 명이 안 된다. 그나마 공립은 13만 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공급이 부족한데 한 곳만 지원했다가 추첨에서 떨어지면 당장 아이를 보낼 곳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학부모들이 유치원의 횡포에 맞서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년에 복직을 앞두고 지난주 유치원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B 씨는 “설명회가 끝나니 원장이 엄마들을 한 명씩 따로 부르더라. 미리 성의 표시를 하면 추첨에서 유리하게 해주겠다고 하던데 이게 부정입학을 시켜주겠다는 뜻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설명회에서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겪은 학부모들은 교과부와 시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뾰족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C 씨는 “교과부와 시교육청 모두 지역교육청 일이라고 미루더라”면서 “유치원 입학설명회가 이번 주말에 대부분 몰려 있는데 교육 당국이 강력히 지도감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교과부 담당자는 “현행법으로는 이런 문제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면서 “일단 공정거래위원회에 유치원이 추첨일을 담합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고 결과에 따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교과부#유치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