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이 두개… 전교 1등, 시각장애 1급”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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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인재상 받는 경남 마산고 2학년 노용후 군

노용후 군에게 시각장애는 넘지 못할 벽이 아니다. 남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며 전교 1등에 올랐다. 친구들이 모르는 내용을 쉽게 알려주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노용후 군 제공
노용후 군에게 시각장애는 넘지 못할 벽이 아니다. 남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며 전교 1등에 올랐다. 친구들이 모르는 내용을 쉽게 알려주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노용후 군 제공
오늘도 새벽 2시까지 노용후 군(17)의 방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아들이 공부하는 걸 지켜보다 먼저 잠들었던 엄마 강영순 씨(43)는 다그친다. “눈을 아껴뒀다 나중에 희미하게나마 아내와 자식 얼굴도 봐야지, 책만 보다 죽을 거니?”

노 군은 웃으며 말한다. “저한테는 공부밖에 없어요. 성적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경남 마산고 2학년에 재학 중인 노 군의 2학기 중간고사 마지막 날(15일) 모습이다.

아침마다 잔소리를 듣지만 노 군의 고집은 꺾이지 않는다. 기특한 마음이 더 크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커진다. 노 군은 시각장애 1급이다. 성적은 문과에서 전교 1등이다.

정말 갑자기였다. 시력을 잃은 건. 찬물로 계속 세수를 했다. “눈에 뭐가 들어갔느냐”며 친구에게 봐 달라고도 했다. 눈곱이 끼었나 싶어 계속 비볐다. 하지만 뿌연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둔 토요일. 노 군은 학교를 마치고 엄마에게 말했다. “이상해요. 앞이 너무 안 보여요.”

노 군에게는 선천적으로 저시력증이 있었다.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오른쪽 눈은 0.2 정도 나왔는데, 그곳에 문제가 생겼다.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그날 밤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시력검사판 앞에 노 군이 섰다. 글자를 하나도 읽지 못하자 간호사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거 보이면 대답하세요.” 흐릿했다.

병명은 망막박리증. 눈의 망막층이 찢어지면서 그 속으로 눈 속의 유리체가 스며들어 망막이 안구 벽으로부터 들뜨는 거라고 했다.

나중에야 노 군은 말했다. “수행평가 때문에 줄넘기 2단 뛰기 연습을 하다가 뒤로 넘어졌어요. 그때부터 앞이 잘 안 보였어요.” 강 씨는 “눈이 불편하다는 걸 조금만 일찍 말했어도 좋았을 텐데…. 성실한 아이라 눈만 비비며 며칠 동안 공부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랬던 노 군이 달라졌다. 어느 날에는 책을 들고 펑펑 울었다. 엄마는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에 데리고 가서 점자를 익히게 했다. 하지만 노 군은 배우려 하지 않았다.

망막을 치료하느라 수술을 받아야 했다. 횟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각막에 합병증이 생겨 수술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고통 속에 노 군은 공부를 손에서 놓기 시작했다. 어느 날, 노 군은 엄마의 기도를 들었다. “공부 잘 못해도 좋으니 다른 애들처럼 교복 입고 다닐 수 있게만 해 주세요.”

그때부터였다. 노 군이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주변에서는 맹학교에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버틸 수 있는 때까지 해보겠다”며 일반고를 고집했다.

지팡이를 짚고 학교를 간신히 다닌다. 학원은 꿈도 꿀 수 없는데 전교 1등에 오른 비결은 하나다. 노력. 밤을 새우기 일쑤다. 확대기로 교과서와 문제집을 읽고, 필기한 내용을 컴퓨터로 타이핑한 뒤 점자로 변환한다.

엄마가 “눈이 더 나빠지면 어떡할 거냐”고 할 때마다 노 군은 웃으며 말한다. “학원비가 몇십만 원이라는데 친구들이 나한테 모르는 걸 물어봐요. 내가 가르쳐 주는 게 훨씬 이해가 잘된대요.”

최근에는 200쪽 분량의 영어 학습서를 만들었다. EBS 인터넷 강의의 핵심 내용을 남동생이 타이핑하고 부모가 책으로 묶었다. 이 학습서를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눠 줬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나 화장실 갈 때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친구들에게.

노 군은 “영어교사가 되면 나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학생을 도와주고 싶다. 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돼서 시각장애인도 공부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노 군은 12월에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는다. 지혜와 열정을 갖고 성취를 이루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재능을 나눈 인재에게 교과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2001년부터 주는 상. 올해 수상자는 노 군을 포함해 100명. 런던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인 양학선 선수도 포함됐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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