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미쳐가고 있다… 학생이 실험대상?”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시험이라곤 달랑 4과목 치고 프린트 한장 놓고 종일 수다…
혁신학교는 무슨… 노는 학교지”

“학교가 미쳐가고 있습니다. 혁신학교로 지정됐다고 시험은 4과목만 칩니다. 4명씩 짝 지어서 학습지 한 장 주고 토론하라고 하니, 하루 종일 수다 떨다 온다네요.…공교육 시켜 달라고 보냈더니 뭐하는 건지…학교 수업을 가정에서 하게 생겼습니다. 공교육의 꽃은 선생님들의 질 좋은 수업 아닌가요.”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7일 올라온 글이다. 혁신학교 A중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가 썼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2009년 처음 만들었다. 이듬해에는 좌파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서울 광주 강원 전북 전남 지역으로 확산됐다. 지난해 181개교에서 올해는 354개교(6월 기준)로 늘어났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8일 “혁신교육지원법을 제정해 혁신학교를 전국적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혁신학교의 상당수는 중간고사를 안 본다. 시험을 치르는 학교도 시험 과목은 일반학교에 비해 크게 적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혁신학교는 이렇게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또 교육청으로부터 해마다 평균 1억800만 원씩을 지원받는다.

서울의 혁신학교 B고에 다니는 C 양은 “학기 초에 국어 선생님이 시험은 안 보고, 자기소개서와 노트 정리, 발표, 논술을 성적에 반영하겠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냥 공부만 하는 일반학교 학생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자녀를 서울의 혁신학교인 D초등학교에 보낸 학부모는 “혁신학교로 바뀐 뒤 기말고사만 보는데, 100% 서술형이라 학생들이 아예 손도 못 대는 경우도 있다”며 “큰아이는 그나마 고학년이라 괜찮은데, 내년에 입학하는 작은아이는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반학교와 다른 수업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혁신학교 E중의 F 군은 “수업 시간에 모둠끼리 토론한 결과를 제출하면 다음 시간에 선생님이 틀린 점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확실한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어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의 불만이 엄살이 아니라는 지표도 있다.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혁신학교 181곳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일반학교보다 높았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강은희 의원(새누리당)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혁신학교는 국어 2.6%, 수학 5.1%, 영어 3.1%였다. 일반학교는 각각 1.9%, 4.4%, 2.9%였다.

강 의원은 “혁신학교의 88%가 초중학교임을 감안할 때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높은 점은 문제다”며 “이 상태로 혁신학교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학생들이 교육감의 실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학교혁신과 관계자는 “줄 세우기식 교육에 익숙해서 그렇지, 전체 학생은 큰 불만이 없다”고 반박했다. 경기도교육청 학교혁신과 관계자도 “혁신학교가 열악한 환경의 소규모학교 위주로 지정되다 보니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높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혁신학교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 비율은 지난해 24.4%로 전국 평균(12.3%)보다 2배가량 높았다. 특히 전체 교원 중 전교조 교사 비율이 절반 이상인 혁신학교는 24곳이었다.

[채널A 영상] 유죄 확정으로 ‘곽노현 실험’ 교육정책 수정 불가피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혁신학교#기초학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