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강강술래’ 승리의 산, 일제 광물 채취 능선 5m 깎여
정상 쇠말뚝 뽑고 평안기원제
이순신 장군은 1597년 전남 울돌목에서 함선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했다. 바로 명량대첩이다. 당시 울돌목 인근 산에서 왜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부녀자들이 횃불을 피우며 강강술래를 불렀고 왜군 동태를 감시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과 문내면에 걸쳐 있는 옥매산(사진)이 바로 그 산이다. 옥매산은 울돌목에서 5km 떨어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봉산(封山)으로서 수군 함선의 목재 공급처였으며 옥이 생산되기도 했다.
1930년대 초반 옥매산은 나라 잃은 설움과 아픔을 처음 겪었다. 일제는 옥매산 정상을 마구 깎아냈고 능선도 흉물스럽게 허물었다. 변남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는 “1917년 옥매산 정상은 173.9m였으나 일제가 정상을 마구 허물어 다른 능선(168m)이 현재의 정상이 됐다”고 말했다.
일제가 옥매산을 허문 것은 전쟁물자인 명반석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명반석은 당시 비행기 동체를 만드는 알루미늄이나 의류염색제 등의 원료로 쓰였다. 현재는 특수 시멘트 원료로 쓰이지만 사용처가 줄었다. 친일문제연구가 심정섭 씨(69)는 조선총독부가 1934년 발간한 명반석 매장량과 산출 조사보고서 8권을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옥매산을 비롯해 전남 진도·무안군과 경남 김해시 등 전국에 분포한 명반석 매장량, 화학·성분분석 등을 149쪽에 걸쳐 다루고 있다. 일제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 8년 동안 명반석 13만여 t을 수탈했다.
광복이 되던 해 옥매산은 일제 침탈의 두 번째 아픔을 겪었다. 1945년 3월경 옥매산 광산 근로자들이 제주도 일제 군사시설 공사에 강제 동원됐다. 근로자들은 옥매산 인근 해남군 황산·문내면 주민들이었다. 광복이 된 뒤인 1945년 8월 20일경 고향으로 돌아오다 제주도와 육지 중간 지점에서 배에 불이 나 118명이 수장됐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제가 패망 직전 옥매산에 뭔가 못된 짓을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13일 옥매산 정상에서 쇠말뚝을 제거하는 모습. 옥매산 쇠말뚝 뽑기 추진위원회 제공황산면 주민들은 올 6월경 옥매산 정상에서 쇠말뚝 하나를 발견했다. 일제 침탈의 세 번째 아픔이었다. 주민들은 일제가 패망 직전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옥매산 정상에 박은 혈침이라고 본다. 주민들은 일제 침탈의 상처를 걷어내기 위해 옥매산 쇠말뚝 뽑기 추진위를 결성했다. 이달 10일부터 이틀 동안 쇠말뚝 제거 작업을 벌였지만 정, 해머, 망치, 강철 줄이 모두 부서졌다. 일제가 명반석 바위에 지름 5cm짜리 구멍을 판 뒤 지름 2.7cm 쇠말뚝을 박고 빈 공간에 석회를 넣어 암반보다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13일 굴착기를 옥매산 정상까지 조심스럽게 이동시켜 파쇄기로 암반을 부쉈다. 이날 오후 6시경 쇠말뚝(길이 60cm)을 암반에서 완전히 뽑아냈다. 주민들은 15일 광복절을 맞아 옥매산 일제 쇠말뚝 제거·평안 기원제를 갖는다. 쇠말뚝에 얽힌 이야기가 담긴 표지석을 세우고 인근에 옥매산 희생 근로자 추모비도 세울 계획이다. 김재남 추진위원회 총무는 “옥매산 쇠말뚝 제거는 일제강점기 상처를 씻어 내고 주민들의 단결과 지역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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