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터놓고 톡]<10>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정치권 잇단 ‘전환’ 공약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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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늘려야 양극화 해소” vs “기업에 강요땐 일자리 감소”

《 4·11총선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던 여야 정치권은 12월 대선에서도 이 공약을 밀어붙일 기세다. 새누리당은 2015년까지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고, 민주통합당은 2017년까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비정규직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정치권은 비정규직을 ‘나쁜 일자리’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무화를 놓고 “일자리 양극화 해소를 위해 당장 추진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비정규직을 전면 감축하면 일자리가 줄고 고용불안이 확대된다”는 반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연말 대선의 경제분야 최대 이슈 중 하나인 비정규직 감축 의무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

■ 이래서 찬성한다

비정규직 감축 의무화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사회차별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해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산성 향상을 명목으로 비정규직 제도가 남용됐고, 이로 인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희생한 측면이 큰 만큼 앞으로의 정책 방향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 양극화 해소 위해 비정규직 줄여야

비정규직 감축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정치권의 비정규직 축소 움직임을 바람직한 변화로 보고 있다. 유정엽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노동인권국장은 “동종 유사 업무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없애야 하고,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치권 논의는 긍정적”이라며 “비정규직 근로자가 지나치게 남용되면서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 요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은 말 그대로 일시적 업무 증가, 휴직 출산으로 인한 결원 대체, 사업 완료에 필요한 채용 등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일정기간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을 뜻하는데, 한국에서는 상시적인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유 국장은 “비정규직의 사용사유 제한을 통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써 현재 전체 근로자의 50% 수준인 비정규직 비율을 10%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2003년 8월 460만6000명에서 올해 3월 580만9000명으로 증가했다.

정치권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신규채용 금지 법제화 움직임과 관련해 박지순 고려대 교수(법학)는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먼저 줄이려는 것은 바람직한 방안”이라면서도 “공공기관은 인력운용의 경직성이 비정규직 사용의 원인이 되었던 만큼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운용 등에서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고 정규직을 늘리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채용을 금지하면 우수한 인력이 공공부문으로 쏠리고, 민간부문에서는 평판을 고려해서라도 비정규직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정부 정책이 민간부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조달에서 비정규직 남용 또는 비정규직 차별과 연루된 사업체에 입찰자격을 제한하는 방식을 제도화하면 민간부문에서도 꼭 필요한 일자리에서만 비정규직을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임금차별 없애면 비정규직 사라져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비정규직 축소가 전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그런 주장을 펴는 분들께 ‘양극화를 방치할 것이냐’고 되묻고 싶다”며 “지금 공식적으로 실업률은 3%밖에 안 되는 만큼 어느 정도는 노동시장에서도 (일자리 감소로 인한)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어 “나쁜 일자리를 방치하거나 양성할 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덧붙였다.

안 위원도 “2007년 비정규직 관련법의 제정과 개정 이후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아직 효과를 분석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업들은 비용이 올라가겠지만 그간 ‘부당한 이윤’을 누려온 만큼 이제는 정당한 이윤만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더라도 비정규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차별시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교수는 “차별을 없애면 비정규직은 자연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차별시정 제도를 강화해서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정규직 근로자에게 독점됐던 급여와 복지를 비정규직 근로자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노사가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정의로운 노동시장의 구현은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자 3자가 함께 협력해 이뤄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차별을 없애려면 법 조항에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명확한 근거를 둬야 한다”며 “협소한 차별 판정 기준, 차별 입증 책임 등 근로자에게 불리한 규정을 개정해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이래서 반대한다

비정규직 감축 의무화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문제에 깊이 개입하면 비정규직의 고용이 오히려 불안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력운용이 경직돼 기업들이 비정규직으로 채우던 자리를 없앨 소지가 크고, 자발적으로 시간제 및 1년 미만 단기계약직을 선택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과보호 받고 있는 정규직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업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정규직 전환 의무화로 일자리 감소’

반대론자들은 노동시장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감축을 법으로 못 박을 경우 결과적으로 일자리만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면 퇴직금, 복지비용 등 전반적인 고용유지 비용이 늘어난다”며 “부담을 감내하기 힘든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들이 일자리에 손을 댈 경우 고용여건이 보장된 정규직보다 감축이 수월한 비정규직이 우선일 수밖에 없어 현재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앞으로 채용할 인력에게 정규직 자리를 주도록 기업을 강제할 경우 현재의 일자리뿐 아니라 미래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비정규직 감축 의무화는 결국 기업 인력운용의 경직화를 불러와 기업들이 사람을 뽑는 걸 주저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일자리 창출이 아닌 일자리 파괴”라고 강조했다. 이윤 창출과 이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 과제인 기업들에 한 번 뽑으면 손댈 수 없는 인력을 채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기업이 사람을 쓰는 건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고 억누를 문제가 아니다”고도 했다.

스스로 비정규직을 택한 근로자들의 선택권을 빼앗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살림을 하는 주부, 노인처럼 본인이 자발적으로 원해 시간제 일자리를 택한 경우가 비정규직의 절반 가까이 된다”며 “이런 일자리를 무조건 정규직으로 돌리는 건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뽑고 근로자가 이를 선택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와 사연이 있는데 이를 무시한 채 ‘비정규직=나쁜 일자리’라는 공식을 대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생각이다.

○ ‘무조건 정규직 전환은 해법 아니다’

비정규직 감축 반대론자들도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은 철폐돼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다만 차별 철폐에 앞서 차별이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또 각 일자리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비정규직을 무조건 없애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전무는 “기업업무는 핵심업무와 주변업무로 나뉘고, 핵심인력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용역을 쓰면 되는 자리에 정규직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도 “흔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말하지만, 동일노동에 대한 판단은 인사관리 차원에서 현장의 판단이 존중돼야 한다”며 “차별은 분명 개선돼야 하지만 기업이 해야 할 판단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는 재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공공부문은 업무 효율성과 일자리 유연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인데 모든 비정규직을 없앨 경우 문제가 오히려 심각해질 수 있다”며 “비대해진 공공 일자리 때문에 국가부도에 직면한 그리스, 스페인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변 실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법적 규제로 해결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정규직 전환을 늘리는 기업에 세금을 감면해 주거나, 비정규직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기업에 고용보험 요율을 높게 물리는 식의 경제적 유인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정규직#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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