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동네사장님]“가족과 함께 밥 먹어 봤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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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직장 그만두고 편의점 연 자양동 30대 사장

“하루도 쉬는 날이 없으니 재충전이 안 되네요.”

23일 오전 2시경 서울 광진구 자양동 ‘자양골목 전통시장’ 인근 하모니마트 사장 김민수 씨(35)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계산대 앞에 선 손님을 뒤늦게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 사장과 함께 보낸 24시간, 기자는 딱 하루만 지켜보는데도 두 다리가 퉁퉁 부었다.

대형마트 점장으로 일하던 김 씨는 지난해 3월 족저근막염이 매우 심해져 직장을 관뒀다. 그는 “발바닥이 아파 어쩔 수 없이 퇴사했지만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아 가게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금으로 전세 대출금을 갚고 다시 대출을 받아 지난해 5월 8일 편의점을 열었다. 하지만 현재 김 씨의 일은 더 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더 줄었다. 마진을 줄여 주변 가게에 비해 판매가를 낮췄지만 매출은 약간는 데 반해 순익은 그대로였다.

김 씨 가게는 24시간 문을 열지만 직원은 김 씨와 아내 이화연 씨(33) 둘뿐이다. 이 씨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김 씨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맞교대로 일한다.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교대시간 때 가게를 함께 정리하는 한두 시간이 전부다. 전 직장에서 하루 11시간을 일하던 김 씨는 오히려 사장님이 된 뒤 근무시간이 3시간 더 늘었다. 좁은 공간에서 일하고 퇴근 이후에는 잠자기 바쁘다 보니 몸무게는 1년 새 7∼8kg 늘었다.

부부는 식사시간이 따로 없다. 김 씨는 출출할 때면 팔리지 않아 유통기한이 지난 빵이나 우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가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을 때도 있지만 한 명이 서 있기도 힘든 좁고 밀폐된 창고에서 박스 위에 앉아 허겁지겁 먹기 일쑤다. 화장실에 갈 때도 가게 문을 잠그고 뛰어 갔다 와야 한다.

낮에는 이 씨가 가게를 지켰다. 가정주부였던 이 씨는 처음 가게로 출근할 때는 바깥일도 하고 남편을 돕는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살림과 가게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이제는 고단하기만 할 뿐이다.

이 씨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점. 아이는 어린이집 교사나 할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도 이 씨는 가게를 지키고 아침에 일을 마친 남편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딸과 함께 공원에 갔다. 이 씨는 “딸이 더 크면 엄마 아빠가 함께 해주지 못하는 빈자리를 더 크게 느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부부의 월 순수입은 180만 원, 시간당 2500원이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생계형 자영업자#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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