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강제로…” 학생들의 고자질 홈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 생활지도 불만품고 미확인 사실 잇따라 올려… ‘고자질 홈피’ 전락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공포(1월) 이후 운영 중인 인권조례 웹사이트(사진)가 학생들이 익명을 악용해 학교에 대해 일방적 비방을 퍼붓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시교육청은 인권조례 취지를 알리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3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이후 게시판에는 하루 3, 4건씩 실명을 거론하며 학교와 교사를 비판하는 글이 오르고 있다. 24일 현재까지 게재된 300여 건의 80% 이상이 이런 글이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학교 측을) 지도해 나가겠다”는 식의 댓글을 달고 있다. 익명성을 악용한 학생들의 무분별한 비방에 교육청이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A고에 다닌다는 학생은 20일 학교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교사가 있고 두발 문제 때문에 밥도 안 먹인다며 학교와 교사의 실명을 올렸다. 그러자 시교육청 측은 21일 “담당 장학사에게 전달 후 조치사항을 알려드리기 위해 조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어 22일에는 “태도 불량에 대한 학생과 학교 측의 입장이 달라 추후 상담을 통해 학교 현장을 단계별로 지도해 나가겠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학교는 반발하고 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평소에 교사를 약 올리면서 교사가 화를 내면 ‘욕했지요?’라는 식으로 대들던 학생들이 두발 단속을 빌미로 총 4건의 글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로는 체벌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역교육청에 보고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 B고에 다닌다고 밝힌 한 학생 역시 22일 교사 2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교사가 강제로 머리를 자르게 하고 뺨을 때리거나 머리를 박게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 학교 교장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처음 듣는다.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사실이 일방적으로 알려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조례의 효력에 대한 법적 논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웹사이트가 운영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는 대법원에 인권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두발·복장 지도 문제로 게시판에서 거론된 C고 교장은 “학생들은 인권조례를 거론하며 두발 단속을 전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최근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학칙을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학교 자율”이라며 “우리는 교과부 방침에 따라서 학생들이 최소한의 두발 규정은 지키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 이준순 회장은 “법적인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인권조례를 강행하면서 익명의 게시판을 통해 학생들의 ‘고자질’을 듣는 식으로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실제로 확인해 보면 학생들의 글과 실제 상황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학교 현장의 의견 수렴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글을 공개하지 않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인권조례#웹사이트#고자질 홈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