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2년]청소년 75%가 음모론에 ‘솔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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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생 상당수 “北소행이라는 정부 발표 의심스럽다”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폭침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초중고교 학생들은 아직도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북좌파단체들이 정부 발표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온라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하고 일부 정치권이 이에 동조하면서 학생들마저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천안함 2주기를 맞아 서울과 경기 지역 초중고생 379명을 대상으로 천안함 폭침 사건 관련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고학년일수록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인식조사에는 서울 및 경기 지역 초등학교 6학년 131명, 중학교 3학년 102명, 고등학교 3학년 146명 등 379명이 참여했다.

초등학생은 전체의 32%인 42명이 “정부의 발표를 완전히 믿는다”고 답변해 학생 중 가장 정부 발표를 신뢰했다. 하지만 중학생은 18.6%인 19명만 ‘완전히 믿는다’고 했고 고등학생은 8.2%만 같은 대답을 했다. 중학생의 54.9%는 “믿는 편이지만 의심스럽다”고 했고 12.7%는 “절반만 신뢰한다”, 6.9%는 “대부분이 거짓이다”, 6.9%는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교생의 91.1%는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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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주관식 질문에 상당수 학생들은 “정부가 이전에도 거짓되거나 과장된 발표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히 중학생 중 42명은 “다른 사건을 덮기 위해 천안함 사건을 터뜨렸을 수도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중 14명은 “정부는 불리한 기사가 나올 것 같으면 연예인 스캔들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천안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했다. 한 학생은 “정부는 평소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발표할 뿐 진실을 말한 적이 별로 없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중학생 8명은 최근 방송사들의 파업과 연결해 “정권 입맛에 따라 언론이 통제된다는데 천안함 사건이라고 TV 뉴스를 전부 믿을 수 있느냐”며 불신했다. 이 밖에 “뛰어난 기술력으로 어뢰나 지뢰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의심스럽다”거나 “북한 소행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학생도 많았다.

학생들 사이에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불신이 커진 데에는 온라인상에 떠도는 각종 음모설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 학생들은 “인터넷이나 트위터에는 정부를 칭찬하는 글보다 비판하는 글이 많다”며 “온라인 정보가 더 정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19일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게시판에는 ‘내가 천안함 사건의 국방부 발표를 믿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비롯해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와 있었다. 글쓴이 ‘nic****’는 “사건 초기 미국도 북한 짓이 아니라고 했고 어뢰 폭발이면 까나리가 떼로 죽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어거지로 결과를 짜 맞춰 믿음을 강요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적었다. 이 밖에도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것’ ‘천안함 당시 미국에 뭔가 빚진 게 있는 이명박 정부가 미국에 강정마을을 바친 것’이라는 등 최근 제주 강정마을에서 빚어진 충돌을 천안함 사고와 연결짓는 황당한 음모론도 인터넷 공간에 떠돌았다.

천안함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학생도 많지 않았다. 사건을 일으킨 국가가 어딘지 묻는 질문에 북한(169명, 44.6%)이라고 답한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92명(24.3%)은 ‘모른다’고 했고 ‘한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답한 학생도 29명(7.6%)이나 됐다. 특히 초등학생의 20%는 ‘천안함 사고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천안함이 무엇인지’ 묻는 주관식 문항에 대해 ‘천안 지역에 있는 배’ ‘하늘(天)의 편안함(安)’ ‘나라 이름’ ‘문화재’ ‘바다에 기름을 유출했던 배’ 등 엉뚱한 답변이 쏟아졌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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