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목에 줄을 5번이나 감고 자살? 형사의 눈이 빛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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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묘한 자살위장’ 룸살롱 여종업원 살해범 검거 스토리

1일 청소부 A 씨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다세대주택 안방에서 방문 손잡이에 인터넷 연결선으로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강모 씨(31·여)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A 씨는 일주일에 한 번 강남의 고급 룸살롱을 지칭하는 속칭 ‘텐프로’ 종업원인 강 씨의 집을 청소해왔다.

신고를 받고 송파경찰서 형사과 직원들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는 ‘자살 증거’가 수두룩했다. 경찰은 책장에 꽂힌 책 속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발견했다. ‘우울하다. 자살하고 싶다’는 글귀였다. 강 씨의 손목에는 과거 자살을 시도했던 상처도 있었다. 집 안 물건들은 정돈돼 있고 금품도 모두 남아 있었다. 물론 외부 침입 흔적도 없었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며 술시중을 드는 룸살롱 종업원의 비관 자살은 강남지역에서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노련한 형사에게는 숨겨진 ‘타살 증거’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우선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된 인터넷 연결선이 걸렸다. 강 씨의 목에는 연결선이 5번 감겨 있었다. 현장에 갔던 한 형사는 “술집 여종업원 자살 사건을 여러 번 봤지만 경황이 없는 자살자가 줄을 다섯 번이나 목에 감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자살을 암시하는 글에도 날짜가 없고, 찾기 어렵게 책 속에 넣어둔 것도 상식 밖이었다. 결정적인 자살 증거는 없는 셈이었다.

송파서 이병국 형사과장은 자살로 위장한 타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즉각 강력계 형사를 투입해 수사를 시작했다. 청소부 A 씨도 “강 씨가 만나던 남자와 자주 싸웠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강 씨의 시신 부검과 타살 도구로 의심되는 인터넷 연결선의 DNA 채취를 의뢰했다. 국과수는 구두로 “목 눌림에 따른 골절이 발견됐다”고 했다. 누군가가 목을 졸랐다는 의미였다.

그 뒤 경찰은 강 씨의 애인인 회사원 최모 씨(35)의 신원을 파악해 소환했다. 최 씨는 “강 씨가 평소 우울하다며 자살 이야기를 여러 차례 꺼냈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이 타살 증거로 압박하자 결국 최 씨는 “목을 졸랐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최 씨는 왜 강 씨를 살해한 것일까. 지난해 10월 두 사람은 강 씨가 일하는 업소에서 처음 만났다. 최 씨는 강 씨에게 “빚을 갚아 주겠다. 새롭게 출발하자”며 강 씨의 마음을 샀다. 씀씀이가 컸던 최 씨는 빚까지 내가며 강 씨와 데이트를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올 초 강 씨가 임신을 한 뒤 결혼을 요구하면서 악화되기 시작했다. 임신한 아내가 있었던 최 씨는 불륜 사실이 들통 날까 두려워 낙태를 요구했다. 강 씨는 그때서야 최 씨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았다. 강 씨는 낙태를 한 뒤 배신감에 큰 상처를 입었다.

사건 당일 최 씨는 강 씨와 이 일로 말다툼을 벌이던 중 강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최 씨는 숨진 강 씨의 목에 인터넷 연결선을 감고 안방 손잡이에 건 다음 자살로 위장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홀로 사는 술집 여성의 죽음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란 채….

송파경찰서는 강 씨를 살해한 혐의로 최 씨를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범행을 자백한 뒤에도 “강 씨가 목을 졸라달라고 하는 환청이 들렸다”고 했다고 한다. 이 과장은 “현장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1만분의 1이라도 있으면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하는데 다섯 번 감긴 줄이 눈에 확 들어왔다”며 “자살로 감춰진 여성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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