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학생인권조례 공포… 기대와 다른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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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 교육감 “학교폭력 근절할 최선책”
일선 교사 “거짓말… 싸워도 손못써”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서울학생인권조례를 26일 서울시보에 게재하면서 인권조례가 곧바로 발효됐다. 경기와 광주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지만 당초 취지대로 학생인권을 지킬 수 있을지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이 조례가 사회적 현안인 학교폭력에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지 확실치 않다.

곽 교육감은 20일 서울교육협의회에서 “학교폭력으로부터의 자유가 학생인권조례의 근본이다. 학교폭력 근절에는 학생인권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의 대책임을 강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소할 가장 유력한 방법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학교폭력과 교권 약화를 더 악화시킬 독소조항이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경기도의 A고교에서는 수업 중에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큰 소리로 영상통화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교사는 이 학생이 훈계에 따르지 않자 5초간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이 교사는 2010년 10월 발효된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6조(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 따라 징계를 받았다. 남의 물건을 빼앗고, 급우들의 수업을 망친 학생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채널A 영상] “아이들 방치” vs “인격 존중” 학생인권조례 시민들 반응은…

비슷한 사례가 이제 서울에서도 생길 수 있다. 서울의 규정은 경기나 광주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권리 보호 대상도 많다. 예를 들어 체벌 관련 조항을 보면 서울의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은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교사들은 여기서 말하는 폭력의 범위가 불분명해서 교사들의 훈육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기도가 ‘체벌은 금지된다’, 광주가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등을 포함한 체벌은 금지된다’고 명확히 규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논리에 갇혀 현장문제 외면” 전교조 교사들도 집행부 질타▼

서울 학생인권조례 독소조항 논란

실제로 지난해 말 서울의 A중학교에서 3학년 남학생 3명이 2학년 남학생 1명을 의자로 마구 때렸다. 이를 말리려고 가해 학생의 어깨를 잡은 젊은 여교사는 “××년, 감히 어딜 만져? 짤리고 싶냐?”는 폭언을 들었다.

인권조례 공포 소식을 접한 이 교사는 “‘모든 언어적 폭력’을 금지한다니 이제 체벌은커녕 말로만 야단을 쳐도 대드는 아이가 많아지지 않겠느냐”면서 “아이들이 눈앞에서 싸워도 손 쓸 방법이 없는데 무슨 수로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막겠느냐”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막는다는 건 그야말로 뻔한 거짓말이다”라며 “교사들 대부분이 속을 끓이고 있지만 교장, 교감은 교육감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안하고, 교사들은 학생들이 무서워 입을 닫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조차 ‘논리의 틀에 갇혀 현장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꺼내고 있다. 전교조 소속인 광주의 A고교 교사는 “전교조 집행부가 서울의 학생인권조례를 옹호하는 것을 보면 정말 교사와 학생을 생각하는지 의아하다. 교단에 서 본 사람이라면 서울보다 훨씬 수위가 낮은 광주의 학생인권조례조차 학교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 교사들 “최소한의 생활지도까지 막으면 위험”

교사들은 사생활 보호라는 명목으로 학생의 일기나 소지품, 교우 관계를 확인할 수 없게 한 점도 걱정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압수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담배나 음란물을 교실에 가져오고, 중고교의 학교폭력 가해 학생 중에는 칼이나 가스총을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도 이를 점검할 길이 없어진 셈이다.

서울 도봉구의 B중학교 교사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학생 중에 과도를 품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는데 평소에 소지품 검사를 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면서 “최소한 남을 해치는 것을 막을 정도의 생활지도는 가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전자기기의 소지와 사용을 금지하지 못하게 한 점도 문제다. 교사들은 학교폭력이 점점 흉포해지는 주된 원인으로 휴대전화를 꼽는다.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은 음란 동영상이나 폭력물을 휴대전화를 통해 돌려보고, 모바일 채팅으로 ‘왕따 모의’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의 A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책상에 구멍을 뚫어놓고 수업 시간에 ‘다음 쉬는 시간에 누구를 때리자’는 문자를 주고받는데 휴대전화 사용을 단속하지 말라니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A고교 교사 역시 “요즘 아이들은 수업 중에도 스마트폰 파일공유 시스템으로 별의별 동영상을 다 돌려본다. 휴대전화를 압수해보면 여교사 성추행 장면, 친구 집단 폭행 장면 등 차마 못 볼 내용이 많다”면서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해야 할 판에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 학교폭력 수위 높아질까 우려

학생인권조례의 부작용으로 학교폭력 수위가 높아질까 봐 걱정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있었다. 고교 1학년인 전진주 양은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아이도 많다”며 “선생님에게 대들고 교실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가 많아지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부 임모 씨(51)는 “아들이 곧 중학교에 들어가는데 폭력적인 아이들을 다스리려면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체벌을 완전히 금지하면 학교폭력이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의 최미숙 상임대표는 “인권조례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과 지도까지 제한해 오히려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박범이 수석부회장은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된 내용은 모두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체벌 외에 아이들을 교육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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