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고교를 바꾸는 소통에 앞장서다… ‘소통의 문 활짝’ 우리학교 인기짱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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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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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고… 아침 챙겨주고… 교통지도도 손수
우리학교 인기 짱 선생님은 확실히 달라요

《2012년 임진년의 첫 해가 밝았다. 작년을 돌이켜보면 교육 현장에는 많은 아픔이 있었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교사도 학생을 때리고, 급기야 최근에는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한 중학생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즐거워야 할 교육의 현장이 왜 이렇듯 ‘아픔’의 장소로 변했을까. 기사에 소개될 6명의 고교 교사는 모두 입을 모아 학교에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시작한 2012년, 학교를 ‘행복’의 장소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고교 선생님들을 소개한다.》

(왼쪽부터) 서울 배화여고 이경표 교장,경기 저동고 사유진 문학교사, 경기 평택여고 김광연 수학교사.
(왼쪽부터) 서울 배화여고 이경표 교장,경기 저동고 사유진 문학교사, 경기 평택여고 김광연 수학교사.
서울 배화여고에는 학생이 아닌데도 교복을 입고 교정을 누비는 사람이 있다. 교내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은 “선생님! 교복 치마 정말 잘 어울려요. 예뻐요”라고 외친다. 교복을 입고 있는 주인공은 이 학교의 이경표 교장. 이 교장은 애교 섞인 웃음을 지으며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배화여고의 겨울철 교복은 올리브그린색의 니트와 베이지색 타탄체크의 치마, 검정색 모직 재킷, 그리고 치마와 동일한 색상과 패턴의 목도리로 구성된다. 이 교장이 2007년 배화여고에 부임한 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2008년 신입생부터 적용한 교복이다.

이 교장은 “처음 부임했을 때 학생들이 교복을 잘 갖춰 입지 않은 것을 보며 ‘왜 그럴까’ 생각을 하다 직접 교복을 입어보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처지가 되어 보니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을 때 교복이 불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개선 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의견을 반영한 교복이 완성된 후에도 이 교장은 하루는 교복치마를, 어떤 날에는 교복재킷을, 또 다른 날에는 하복 카디건을 입고 업무를 본다. 직접 입어보며 교복이 활동하기에 편한지, 더운지 혹은 추운지를 가늠해야 학생들의 요구사항에 귀 기울일 수 있다는 게 이 교장의 생각이다.

이 학교 2학년 오승희 양은 “교복을 입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에서 학생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선생님을 보며 학생들도 교복과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전했다.

이 교장은 최근 ‘국민 교복’으로 자리 잡은 패딩 점퍼에 관심이 많다. 그는 “많은 학생이 패딩 점퍼를 즐겨 입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 패딩 점퍼를 교복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그 옷도 한번 입어볼 계획”이라며 웃었다.

‘엄마’의 사랑을 베푸는 교사도 있다. 경기 저동고 사유진 문학교사는 ‘빵 쌤(‘쌤’은 선생님을 뜻하는 학생들의 은어)’ ‘토스트 쌤’으로 불린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오는 학생들을 위해 직접 식빵을 굽다 생긴 별칭이다. 사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14반에서는 아침 자습시간마다 이색 풍경이 펼쳐진다.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사 교사는 교실 뒤편에서 식빵을 토스터에 넣고 굽는다. 그는 따뜻하게 구워진 식빵에 딸기잼을 바른 후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입에 식빵을 하나씩 물려준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웬 식빵?’이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은 “우리 담임선생님은 아침식사도 챙겨줘”라며 다른 반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오히려 사 교사에게 “잼이랑 빵을 다른 종류로 바꿔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처음으로 담임을 맡아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이 아침마다 ‘아침은 먹었어?’라고 물어보시는 말씀이 굉장히 친근감 있게 느꼈던 걸 떠올렸어요. 저도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지 못한 학생들에게 빵을 구워주기 시작했죠. 아무래도 다른 선생님보다 연륜이나 경험이 부족해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 학생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했어요. 빵을 구워주는 건 학생들과 끈끈한 정을 쌓기 위한 저만의 방법입니다.”(사 교사)

경기 평택여고 학생들은 매일 아침 등굣길에 김광연 수학교사를 만난다. 김 교사는 학생들의 등굣길 교통지도를 맡고 있다. 눈이 오거나 비가 내려도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5시 30∼40분부터 오전 8시까지 교통지도를 한다. 학교 진입로 삼거리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학생들이 무사히 등교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한다. “새벽 시간에 삼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이 종종 있어 학생들이 위험할까봐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교사는 2시간 반 동안 학교에 제일 먼저 등교를 하는 학생부터 조금 지각하는 마지막 학생까지 전교생의 교통지도를 책임진다. ‘등교를 무사히 하는 일이 학교생활의 시작’이라는 신념으로 한 학생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그는 뛰어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그가 지도했던 학생 1000여 명의 이름을 외운다. 교통지도를 할 때 ‘혜림아, 안녕’ ‘정윤아, 횡단보도 안쪽으로 걸어야지’라고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간다. 이 학교 2학년 이해은 양은 “학생들도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며 선생님을 잘 따른다. 학교 앞 거리에서 위험할 때가 많은데 선생님 덕분에 교통사고 한 건 없이 안심하며 학교를 다닌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서울 광영여고 윤계희 수학교사, 경남 창원남산고 김종주 일본어교사, 서울 상명대사범대학부속여고 김종문 영어교사.
(왼쪽부터)서울 광영여고 윤계희 수학교사, 경남 창원남산고 김종주 일본어교사, 서울 상명대사범대학부속여고 김종문 영어교사.
▼ 선생님(X) 아빠(O)… 사제간 편지쓰기… 학생에 모닝콜… “우린 이렇게 소통합니다” ▼

○ “모두 내 자식… 아빠라고 불러라”

서울 광영여고에는 28명의 딸을 둔 ‘아빠’가 있다. 이 학교 윤계희 수학교사는 담임을 맡은 2학년 4반 학생들과 처음 마주한 순간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학교에서는 내가 너희들의 아빠다. 출석번호 1번은 첫째 딸, 28번은 스물여덟 번째 딸이다. 1년 동안은 모두 내 자식이다. 그러니 앞으로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아빠라고 불러라.(웃음)”(윤 교사)

‘아빠’ 호칭은 상담시간에 더 힘을 발휘한다. 학생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나 용기가 필요할 때 윤 교사의 ‘딸 사랑’은 더욱 커지는 것. 그는 ‘넌 내 딸이니까 잘할 거다’ ‘힘든 시기이지만 내 딸은 모두 극복할 거라 믿는다’라는 말을 건네며 힘을 불어넣는다. 수줍음이 많은 여고생들이 이런 윤 교사를 황당해하진 않을까? 이 반의 다섯 번째 딸인 김지현 양은 “처음에는 ‘아빠’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빠와 딸’의 관계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눠 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의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고 말했다.

‘아빠’ 호칭은 교사로서 단점일 수도 있는 성격을 고쳐보려는 윤 교사의 노력의 결과다. 그는 원래 다정다감하기보다는 무뚝뚝한 성격이어서 학생들과 세대 차이를 점점 느끼면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 그는 “말투도 부드럽게 고치고 집에서 딸의 코치를 받아가며 일부러 웃으려 노력했다. 출근길에 ‘오늘 하루도 크게 웃자’라고 다짐하며 스스로를 훈련시킨다”고 말했다.

‘아빠’라는 호칭이 단순히 학생과 친해지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 호칭 속에는 “학교에서 지식만을 가르치기보다는 학생들이 정신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도록 잘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윤 교사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 “1분 동안 속마음을 적어봐”

경남 창원남산고 김종주 수석교사는 그가 가르치는 일본어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김 교사가 매 시간 진도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1분 페이퍼’가 바로 그 편지다.

첫 시작은 가볍다. 이름과 생일, 이번 수업시간에 가장 재밌었던 것, 그리고 가장 어려웠던 것 등을 1분 안에 적을 수 있는 분량으로 A4용지에 담아낸다. 그러면 김 교사는 각 학생에게 모두 다른 답변을 적어준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답변 글을 바탕으로 다시 1분 페이퍼에 자신의 생각을 적는다. 또다시 김 교사의 생각이 이어져 글로 적히고, 그렇게 김 교사와의 ‘편지쓰기’가 진행된다. 처음에는 1분에 담아내는 이야기였지만 편지가 여러 번 오갈수록 30분, 1시간까지 시간을 들여 속마음을 풀어놓는다.

그야말로 선생님과의 ‘속 깊은 대화’가 일 년 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담임을 맡지 않은 반의 학생들도 그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성격, 취향 그리고 그들의 꿈까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비밀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말한다. 옆 학교 남학생을 좋아해 속병을 앓는 학생의 사연, 학교 체육선생님을 남몰래 좋아하는 사연, 시험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속상한 일 등 학생 개개인의 고민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김 교사는 첫 번째 해결책을 ‘소통’이라 생각했다. 그는 “한반에 앉아 있는 40여 명의 ‘자유로운 영혼’들은 모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천편일률적인 교육 방식 속에서 그들의 개인성이 묵살되는 게 안타까웠다”라면서 “소통을 위해서는 개인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1분 페이퍼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그는 “‘즐겁지 않으면 학교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르침의 목표로 삼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 등교 40분 전에 “모닝콜!”


서울 상명대사범대학부속여고 김종문 영어교사는 지각이 잦은 반 학생들을 위해 직접 ‘모닝콜 서비스’를 한다. 모닝콜의 방법은 간결하면서도 강력하다. 등교시간 40분 전쯤인 오전 7시에 전화를 걸어 “모닝콜!”이라고 한마디 외치는 것. 처음에는 ‘정말로 선생님이 모닝콜을 해줄까’라고 생각한 학생들은 직접 전화를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누구세요’라고 대답하면 ‘선생님 목소리도 못 알아듣니’라는 장난 섞인 한마디가 돌아와 잠에서 깬다. 나중에는 평소 지각을 잘하지 않는 학생들도 선생님의 ‘모닝콜!’ 외침을 듣는 게 부러워 “저도 해 주세요”라며 모닝콜을 요청했다.

그는 “지각하는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일방적인 체벌이나 훈계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친근한 방법으로 학생을 달래서 학교에 잘 나오게끔 하기 위해 모닝콜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학생과의 친근한 관계를 위한 노력은 모닝콜뿐만이 아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여서 학생들의 아버지보다 더 연배가 높아 학생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직접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불쑥 나타나 대화에 참여한다. 유행하는 노래, TV 드라마 등 대화의 장르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와 TV 드라마 ‘브레인’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잘 모르는 대화 내용이라도 일단 같이 참여해서 대화하려 한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TV프로그램이나 노래는 따로 챙겨 보고 들으며 그들의 관심사에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또 가끔 학생들의 남자친구 안부를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김 교사의 반 학생인 1학년 홍효정 양은 “우리 눈높이에 맞게 유머를 곁들인 이야기를 해주셔서 친근하게 어울릴 수 있다”면서 “일 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담임선생님을 믿고 따라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승주 기자 canta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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