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주천면 한 축사의 소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갈비뼈와 엉덩이뼈를 앙상히 드러내고 있다. 한효준 채널A 기자 ybshan@donga.com
전북 남원시 주천면 지리산 자락의 한 농가. 한우 20마리가 발목이 잠길 만큼 오물로 가득한 축사에 갇혀 있다. 소들은 갈비뼈와 엉덩이뼈가 드러날 만큼 깡말랐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목을 빼다 상처가 생겼고 영양이 부족해 헛배만 불렀다. 축사 주인 정모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신세를 한탄한다. “팔(지)도 못 허고 죽이지도 못 허고, 어휴∼ 그런 형편이여. 소가 최고 애물단지여.” ○ 사료 값 아끼려 소 굶겨
축산농가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소 값은 폭락했는데 사료 값이 급등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으로 파산 위기를 맞은 농가가 크게 늘고 있다. 심지어 사료 값을 아끼기 위해 소를 굶기는 농가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구제역 파동으로 쇠고기 소비가 크게 줄어든 것도 소 값 하락을 부추겼다. 정 씨는 “제대로 키우려면 하루에 4kg을 먹여야 하지만 사료 값이 너무 비싸 안 죽을 만큼 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올해 국제 곡물가 급등과 환차손으로 25kg 기준 배합사료 가격이 연초 1만 원에서 1만3000원으로 30% 올랐다. 지난가을 잦은 비로 볏짚 수확량도 크게 줄어 풀 사료 한 단에 7만 원으로 지난해의 두 배 가격이다.
정 씨는 그렇다고 소를 팔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3년 전 마리당 400만 원 했던 소가 지금은 250만 원에 불과하다. 3년간 다 키운 소 값도 380만 원으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사료비 외상값으로 1000만 원이라는 빚만 늘었을 뿐이다. 소를 키울수록 손해 보는 셈이다. ○ 공급과잉과 복잡한 유통단계 등 4중고
현재 전국 한우 사육 수는 300만 마리. 업계가 추정하는 적정 사육 수 250만 마리보다 50만 마리가 더 많은 실정이다. 당분간 가격 하락은 불가피한 상황. 수입 쇠고기 반대 시위와 한우의 고급 브랜드화로 쇠고기 가격이 오르자 농가가 앞다퉈 마릿수를 늘린 게 부메랑이 돼 버린 것이다.
최대 12단계까지 이뤄지는 복잡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간상인들의 마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문제다. 통상 유통 과정은 농가-우시장-수집상-공판장-도축-식품포장-가공-대형유통업체-도매시장 등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부위별로 유통 과정이 다른 경우도 있다. 최근 600kg 암소 출하 가격은 지난해보다 67% 떨어졌지만, 대형마트에서 파는 한우의 등심 가격은 14% 하락하는 데 그쳤다. 유통 단계에서 현지의 시세와 무관하게 중간상인들이 이윤을 가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확대될 것으로 보여 축산농가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은 축산업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10년간 축산발전기금 2조5000억 원을 조성해 축사 현대화와 도축 가공 유통을 함께 하는 대형 축산기업 육성으로 축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축산업계는 축산기업이 대형화하면 현재의 공급 과잉 상태를 더욱 부추기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61)은 “전국 16만 한우 농가 가운데 20마리 미만을 사육하는 영세 농가가 76%인 만큼 사육 수를 줄이거나 융자이율을 낮추는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김성진 채널A 기자 kim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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