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 미군기지가 몰려 있는 경기지역 기초자치단체들이 정부가 미군기지의 매각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개발을 아예 봉쇄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지자체는 반환 기지에 대학과 기업, 산업단지 등을 유치하거나 공원으로 조성하는 지역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했지만 비싼 땅값에 발목이 잡혀 있다. 국방부가 주한미군이 이전하는 평택기지 조성비(대략 3조4000억 원)로 충당하기 위해 시세 감정가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평택 재배치로 전국적으로 반환되는 미군기지 54개 중 34개가 경기도에 있다. 면적으로는 전국 반환기지 중 96%(173km²·약 5230만 평)를 차지한다.
○ 땅값 때문에 발목 잡혀…차라리 사업 중단
이인재 경기 파주시장은 지난달 미군기지 매각가격을 낮춰달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김관진 국방부 장관 앞으로 보냈다. 이 시장은 “국방부가 반환기지 매각 금액을 시세 감정가인 3.3m²(약 1평)당 150만∼300만 원으로 책정해 개발사업은 물론이고 공원 조성도 어렵다”며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묶어 개발은 물론 매각 자체를 막겠다”고 밝혔다. 도시계획 입안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국방부를 압박하기 위한 마지막 궁여지책이다.
파주시에는 캠프 에드워드를 비롯해 모두 12개의 반환기지(약 2671만 평)가 있지만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없다. 특히 반환 미군기지의 첫 개발사업으로 주목받았던 캠프 에드워드의 이화여대 연구단지 유치는 파주시와 이화여대가 2006년 양해각서까지 체결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화여대는 652억 원을 주장했지만 국방부는 시세 감정가인 1750억 원으로 평가했다. 협상 끝에 가격이 일부 조정됐지만 결국 땅값 때문에 무산됐다.
경기 의정부의 캠프 시어즈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장소 등 광역행정타운으로 조성된다. 그러나 3.3m²당 300만 원 안팎에 이르는 토지가격이 부담돼 해당 기관들이 선뜻 입주를 못하고 있다. 공원으로 조성되는 캠프 홀링워터의 경우 의정부시가 가용 예산이 부족해 3분의 1만 용지를 매입한 채 계획보다 늦춰지고 있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수십 년 전 주민에게 평당 1000∼2000원씩 주고 빼앗다시피 한 땅을 이제는 300만∼400만 원을 받겠다는 것은 ‘날강도’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며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자체로서는 도저히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데 국방부가 계속 고압적으로 나온다면 공원으로 지정해 개발을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환기지 개발에 필요한 토지매입비와 공사비는 국고 보조를 제외하면 파주는 846억 원, 화성은 1594억 원이 각각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예산 중 가용 재원이 수백억 원도 채 안 되는 지자체들로서는 이만한 예산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지자체들은 호소한다.
○ 용산, 평택과 형평성에도 어긋나
경기도와 지자체들이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용산 기지 및 평택과의 형평성 문제다. 용산 기지의 경우 정부가 국비 1조5000억 원을 들여 공원까지 조성해 주면서 경기도에서는 폭리를 취하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김학친 경기도 공여구역팀장은 “서울시는 거저 주면서 경기도에서는 땅장사를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경기도는 남의 자식이냐, 당연히 무상양여를 하든지 땅값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시장은 “미군기지가 새로 이전하는 평택에는 특별법까지 만들어 10년간 18조 원을 지원하면서 40∼50년간 고통받아온 반환기지에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 주한미군기지 반환 ::
전국 93개 기지 242km²(약 7320만 평) 중 54개 180km²(약 5445만 평)가 2005년부터 연차적으로 반환 중이다. 현재 32개가 반환됐다. 반환 기지는 해당 지자체에 우선적으로 반환된다. 정부는 도로 하천 공원에 한해서만 용지 매입비의 60∼80%를 지자체에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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