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5년간 성폭행한 50대’… 국민참여재판으로 징역 15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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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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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랑일 수 없다’

올 3월 50대 남성에게 4년 8개월간 성폭행을 당한 20대 여성의 사연을 동아일보가 보도하자 많은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보 3월 10일자 A12면 50대 악마’에 5년간 성폭행…

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토익 점수는 만점에 가까운 데다 유명 공기업에 취업할 정도로 야무진 여성이 그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신고를 안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뒤늦게 경찰에 붙잡혀 법정에 선 윤모 씨(당시 가명 이경수·55)는 “우린 사실상 주말부부였고 합의하에 가진 성관계였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김모 씨(당시 가명 박은경·27)는 몸서리쳐지는 악몽으로, 가해자 윤 씨는 사랑의 추억으로 여기는 이 사건에 대해 지난달 24일 시민 배심원 9명과 법원이 판결을 내렸다.

○ “피해자는 두 얼굴의 여인이다”

피고 윤 씨의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의 핵심은 김 씨와 윤 씨 관계가 연인이었는지 여부. 윤 씨는 폭행과 협박, 성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강간이 아닌 화간”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참여재판은 통상 하루에 끝나는데 이 재판은 3일간 매일 오후 11시를 넘길 정도로 공방이 치열했다.

윤 씨 변호인은 배심원들에게 “예쁘고 능력 있는 여대생이 당뇨에 무직인 50대 늙은이와 4년 8개월간 사랑을 나눴을 리 없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증거로만 판단해 달라”고 당부하며 변론을 시작했다.

동아일보가 3월 10일자 A12면에 보도한이 사건 관련 내러티브 리포트.
동아일보가 3월 10일자 A12면에 보도한이 사건 관련 내러티브 리포트.
변호인 측은 △피해자가 수감 중인 피고에게 절절한 애정이 담긴 편지를 수십 통 보냈고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지구대에 신고할 만큼 용의주도한 피해자가 성폭행 사실은 4년 넘게 신고하지 않은 점은 납득이 안 되며 △피고의 재산을 노리고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프로젝터 화면에 피해자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띄우고 ‘당신이 그리워요’ ‘마음을 다해 사랑해요’ 등 문구를 하나씩 짚어가며 “피해자의 순진무구해 보이는 외모에 속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피고는 전부인도 성폭행 후 결혼”

반격에 나선 검찰 측은 변호인의 주장을 차례차례 반박했다. 윤 씨가 이혼한 전처와 처남을 흉기로 협박한 혐의로 10개월간 수감돼 있을 때 피해자 김 씨가 서너 장의 편지를 매주 두 통씩 보낸 것은 맞지만 강압에 의한 것이란 주장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김 씨는 “피고가 감옥에 가기 전 편지를 성의껏 보내지 않으면 미행을 붙여 괴롭히고 출소 후 보복하겠다고 겁을 줘 할 수 없이 편지를 썼고, 그마저 너무 귀찮아 두 달 뒤부턴 컴퓨터로 작성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해자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한 후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용감했다는 피고 측 주장에 대해선 “피해자가 그 문제로 경찰서를 찾은 건 피고를 신고하고 나서 두 달 뒤 일로, 그 사건을 두고 피고가 대범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김 씨가 피고의 돈을 보고 접근했다는 주장도 허위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윤 씨는 지난 5년간 마땅한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고, 전처 명의로 된 2000만 원 상당의 집을 피해자에게 양도했지만 그보다 많은 돈을 김 씨에게서 뜯어낸 것으로 계좌 이체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특히 검찰은 윤 씨가 사줬다고 주장한 노트북컴퓨터와 관련해 김 씨의 카드로 결제한 영수증을 제시하며 피고의 주장이 거짓임을 부각시켰다. 그 후 검찰은 피해자의 온몸에 멍이 든 사진 등 윤 씨의 폭행과 협박을 보여주는 증거를 하나씩 나열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준 건 검사가 지나가듯 던진 한마디였다. 이혼한 피고의 전 부인이 윤 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돼 결혼했다는 것. 검사는 “당시 자녀가 둘 있는 39세의 홀아비였던 윤 씨는 초임 교사로 첫 출근을 하던 23세 이모 씨를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내용을 전처의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 윤 씨 변호인이 “왜 사건과 무관한 얘기를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하자 검사는 말을 멈췄지만 배심원단은 크게 술렁였다.

○ “이런 사랑은 없다”

24일 오후 11시경 배심원들과 협의를 마친 재판장 문정일 부장판사(대전지법 형사12부)가 만장일치로 유죄를 결정한 선고 결과를 읽자 윤 씨의 몸이 조금씩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랑은 없다”며 징역 15년에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선고했다. 검사가 당초 구형한 형량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다른 인간관계를 모두 제쳐둔 채 주말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만나 1년에 219차례나 성관계를 맺는 건 어느 한쪽(피고)이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관계가 아니고선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선고문 낭독이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윤 씨는 교정직원이 옷자락을 끌자 그때서야 몸을 움직였다. 마지막까지 “우린 부부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눴다”고 주장한 윤 씨는 재판 이틀 만인 지난달 26일 항소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한 인턴기자 부산대 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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