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매달려 이틀을… 93세노인 ‘기적 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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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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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야산서 실종 할아버지 40여시간 만에 구조

얼마나 지났을까….

심익선 할아버지(93·사진)는 몽롱해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찌된 일인지 몸은 꼼짝할 수가 없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나뭇가지에 걸린 양쪽 다리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점점 의식이 흐려질 무렵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누가 코와 입에 무엇인가를 가져다 댔다. 갑갑하던 가슴이 일순간 툭 터지는 느낌. 이제 살았나 보다.

○ 고구마밭에 김매러 갔다가

23일 오후 심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고구마밭의 풀을 제거하기 위해 강원 삼척시 교동 집 뒤의 야산으로 올라갔다. 평소 약한 치매 증상은 있지만 혼자 밭일을 나갈 정도로 몸은 건강한 편. 일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던 심 할아버지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산비탈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집에서는 이날 오후 8시가 넘도록 심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경찰과 119에 실종신고를 했다. 출동한 삼척소방서 119구조대를 비롯해 가족과 주민 등 40여 명이 심 할아버지가 간 것으로 추정되는 집 인근 야산의 고구마밭을 중심으로 수색을 벌였지만 밤이 어두워 찾는 데는 실패했다. 이 야산은 비록 도심 근처의 작은 산이지만 경사가 심하고 숲이 울창해 수색 도중 구조대원들의 사고도 우려됐다.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다시 수색 활동이 시작됐지만 할아버지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다. 119구조대와 경찰, 가족, 마을 주민 등 50여 명이 발견한 것은 고구마밭에서 100여 m 떨어진 곳에 있던 할아버지의 낫. 잠시 수색 작업이 활기를 띠었지만 더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이날 밤 삼척지역에는 비가 내려 수색을 계속할 수도 없었다.

심익선 할아버지가 구조될 당시 상황을 그림과 사진으로 재구성한 사건현장. 두 발은 하늘 쪽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아 몸을 지탱하고 있다. 이 지점은 산 위쪽에서 2, 3m 아래이고 70, 80도의 급경사 지역이다.
심익선 할아버지가 구조될 당시 상황을 그림과 사진으로 재구성한 사건현장. 두 발은 하늘 쪽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아 몸을 지탱하고 있다. 이 지점은 산 위쪽에서 2, 3m 아래이고 70, 80도의 급경사 지역이다.
수색은 사흘째인 25일까지 이어졌다. 삼척소방서는 강원도소방본부에 의뢰해 양양소방항공대가 보유한 인명구조견까지 긴급 투입했다. 구조견을 투입한 지 1시간여 후인 이날 오후 2시경 갑자기 구조견이 크게 짖기 시작했다. 경찰과 구조대 무전기에서는 “할아버지를 찾았다”는 말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 기적의 40여 시간

발견 당시 심 할아버지는 지난 장마 때 쓸려 내린 나뭇가지와 뿌리 등이 경사지에 쌓여 마치 큰 함정같이 만들어진 공간에 빠져 있었다. 이 지점은 70∼80도의 급경사지로 능선에서 2∼3m 아래 부분. 할아버지는 이곳에 두 발이 걸린 채 거꾸로 매달린 자세로 있었다. 두 손으로 아래쪽의 나뭇가지를 붙들어 간신히 몸만 지탱하고 있는 상태였다. 얼굴은 온통 나뭇가지 등에 긁혀 있었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몸은 비와 땀에 젖어 축축한 채 저체온증이 걱정될 정도로 차가웠다.

이 상황에서 93세 노인이 근 40여 시간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버틴 것. 현장에서 지휘한 김상철 삼척소방서장은 “빗물은 마셨는지 모르지만 90세가 넘은 노인이 이런 상황에서 이틀간이나 버텼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응급조치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심 할아버지는 검진 결과 왼쪽 다리에 타박상을 입고 인대가 손상된 것을 제외하고는 큰 부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 할아버지는 입원 이후 26일까지 거의 잠에 빠져 있다시피 했다. 가는귀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그는 가족에게 그저 “미끄러졌다”고 말했다.

삼척=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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