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병, 기수열외 당할까봐 충동 범행… 정이병, 선임들 가혹행위 괴로워 공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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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수사서 새로 드러난 사실

해병대 총기사건은 가해자인 김모 상병(19)이 소외감으로 인한 자살충동과 후임병의 무시에 따른 격분을 이기지 못해 저지른 범행으로 나타났다. 범행을 공모한 정 이병(20)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괴로워하다 김 상병과 범행을 모의했다고 군 조사에서 진술했다.

○ 소외된 기분에 자살충동 느껴


김 상병은 사건 당일(4일) 평소 자신에게 선임 대접을 해주지 않은 후임병이 선임병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소외된 기분에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군 수사당국은 설명했다. 김 상병은 자신이 ‘기수열외’라는 집단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기수열외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김 상병은 사건 이틀 전 인근 편의점에서 구입해 창고에 숨겨뒀던 소주 1병을 마신 뒤 정 이병과 함께 동료들을 죽인 뒤 탈영하기로 하고 총기와 탄약을 훔쳐 범행을 저질렀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군 수사 관계자는 “두 사람이 지난달 초에도 ‘힘들다. 휴가 때 사고치고 도망가자’고 모의했다”고 말했다.

범행 당시 정 이병은 사전 각본대로 수류탄을 던져 고가 초소를 폭파해야 했지만 겁에 질려 실행에 옮기지 못하자 김 상병은 정 이병과 함께 창고로 들어가 “같이 죽자”며 수류탄 안전핀을 뽑았고 정 이병은 순간 도망쳐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김 상병은 훈련소 인성검사에서 정서불안과 성격장애, 정신분열증 등이 발견돼 자대 배치 후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동료들도 그가 다혈질이고 취침시간에 부대 안을 배회하는 등 이상행동을 하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부대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가혹행위에 불만 품고 범행 모의


정 이병은 평소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괴로워하다 김 상병이 범행을 제의하자 동조했다고 군 관계자는 밝혔다.

정 이병은 “한 선임병이 ‘내가 하느님과 동급인데 왜 기독교를 믿느냐. 차라리 내게 기도하라’며 성경책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다른 선임병은 목과 얼굴에 안티프라민 연고를 바른 뒤 씻지 못하게 했다”고 진술했다고 군 당국은 전했다. 정 이병은 지방 모 신학대 1학년을 끝내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정 이병은 또 ‘성기를 태워버리겠다’며 바지 지퍼 부위에 살충제를 뿌린 뒤 불을 붙이거나 자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구타를 한 선임병들도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 병영문화혁신 작전 성공할까


이번 총기사건을 계기로 해병대는 모든 장병을 상대로 병영문화 혁신을 위한 집중교육을 하고 인권전문가를 초청해 인권교육을 하는 등 ‘병영문화혁신 100일 작전’에 돌입했다. 8일엔 유낙준 사령관 주재로 긴급지휘관회의를 열어 병영문화 개선대책을 논의한다.

하지만 이런 ‘100일 작전’이 해병대의 병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휘관들조차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구타나 가혹행위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방부 감사관실의 3월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해병 1사단의 모 이병은 지난해 8월 선임병에게 맞아 전치 5주의 다발성 늑골 골절을 입었다. 그러나 해당 대대장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중대장은 입원 중인 이병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축소해 진술하도록 요구했다. 감사관실이 최근 2년여간 해병 1, 2사단의 병원진료기록을 확인한 결과 고막천공 등 구타로 의심될 만한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943명에 달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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