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새학기 D+2주··· 중학교 교실 스케치

  • 동아일보

학생들 최우선 과제는 친구만들기···“와, 너도 빅뱅 팬?” 공감대 형성 ‘작전’
선생님은 위엄있고 자상한 이미지 어필 노력··· 20대 중반 男교사, 웃음기 걷고 기선제압!

새 학기 2주가 지난 중학교 풍경. 몇몇 학생들이 지난해 친했던 친구와 함께 하교하기 위해 다른 반의 종례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새 학기 2주가 지난 중학교 풍경. 몇몇 학생들이 지난해 친했던 친구와 함께 하교하기 위해 다른 반의 종례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11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중학교 1학년 ○반 기술과목 수업시간. 4명이 한 조가 되어 토의를 하는 모둠활동이 한창이었다. 9개 모둠 이름은 다채로웠다. ‘무지개’ ‘올망졸망’ ‘프리티걸’….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름 하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어색한 사람들’. 이 모둠의 조장을 맡은 박모 양(13)은 모둠 이름을 ‘어색한 사람들’로 짓게 된 연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모둠은 4명 중 최소 2명은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서로 얼굴을 아는데, 우리 모둠은 유독 다 다른 초등학교 출신이라 토론하기가 너무 어색한 거예요. 제가 큰맘 먹고 ‘이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먼저 말을 꺼내도 다들 쭈뼛쭈뼛하더라고요. 특히 남자애 한 명은 아예 입을 열지도 못했어요. 아마 제가 좀 예쁘게 생겨서 더 얼었던 것 같아요!”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약 2주가 지났다. 3월의 중학교는 그 어는 때보다 분주하다. 아직 처음 만난 친구들과의 어색함을 미처 다 없애지 못한 학생들은 더 친근하게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방안을 고심한다. 교사는 새로이 맞이한 학생들에게 ‘위엄 있고 자상한 선생님’으로서의 이미지를 어필하려고 애쓴다. 새 학기 이모저모. 이들은 지난 2주 동안 어떤 적응기를 거쳤을까?

3월 초 학생들의 ‘최우선 과제’는 뭐니 뭐니 해도 ‘친구 만들기’다. 단짝친구나 친한 무리는 대부분 한 달 이내에 결성되기 때문. 친구들을 재빨리 사귀어 두어야만 ‘왕따’(집단따돌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남학생들은 주로 “방과 후 PC방에서 같이 온라인게임을 하자”고 제안하거나 “축구를 하자”고 권유하며 서로에게 접근한다. 여학생들의 경우 연예인이나 패션에 대한 대화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중학교에 첫발을 내딛은 1학년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한 치밀한 ‘작전’을 벌이기도 한다. 올해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에 입학한 김모 양(13). 김 양은 학기 초 3일 동안 같은 반 여학생들이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TV 프로그램, 가요에 대한 대화가 나올 때마다 유심히 듣고 분석했다. 결과는?

“여학생 18명 중 무려 10명이 ‘빅뱅’의 팬인 거예요. 이를 이용해 친해지기 작전에 돌입했죠. 점심시간 방송에서 가끔 가요를 틀어주는데, 한번은 빅뱅의 최신 곡이 나오기에 일부러 큰 소리로 따라 불렀어요. 그랬더니 주변 친구들이 ‘와, 너도 빅뱅 좋아해?’라며 먼저 말을 건네더라고요! 전 사실 ‘2AM’ 팬이지만, 빅뱅에 대한 관심도 적극적으로 보여 훨씬 빨리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어요.”(김 양)

반면 고교 진학을 앞둔 3학년 교실 분위기는 비교적 얌전하다. 1, 2학년 땐 쉬는 시간마다 장난을 치던 학생들도 3학년이 되면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모범생으로 돌변하곤 하기 때문. 특히 상위권 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보이지 않는 탐색전을 펼친다. ‘나와 내신 성적으로 경쟁하게 될 친구가 누구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다음은 전교 5등 안에 드는 중3 이모 군(15·서울 강남구)의 말.

“이번 회장 선거에서 저를 두 표 차이로 앞지른 애가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반 1등, 걔가 2등인 것 같은데 선거에 져서 그런지 유독 신경 쓰여요. 저처럼 특목고 진학이 목표인지도 궁금하지만 아직 친하지 않아 묻지 못하고 추측만 하는 중이에요. 평소 공부를 어떻게, 얼마나 하는지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죠.”(이 군)

학생들만 새 학기 적응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새 학기가 낯설고 어색한 건 교사도 마찬가지. 특히 남고에서 담임을 맡은 여교사나 올해 갓 부임한 교사들은 학기 초 학생들을 기선제압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서울의 한 중학교 이모 교사가 그러한 예.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바로 합격해 올해 첫 발령을 받은 이 교사의 나이는 23세다. 담임을 맡게 된 2학년 아이들과 고작 10년 차이다. 처음엔 ‘젊은 만큼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웃는 얼굴로 학생들을 대한 이 교사였지만, 학기 시작 1주일 만에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웠다. 왜일까?

“학기 초엔 방과 후 학교 참석여부, 건강상태 등을 묻는 중요한 가정통신문을 많이 걷는데, 제 날짜에 제출하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3, 4일씩 늦게들 내지 뭡니까. 지각도 하루에 10명씩 하고요.”

이 교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학급에서 소위 ‘날라리’로 통하는 양모 군(13)이 출석부에 붙일 증명사진을 5일째 안 가져온 사실을 안 이 교사. 그는 노는 학생을 호되게 혼내는 모습을 본다면 학생들도 더 이상 자신을 만만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종례시간 그는 모든 학생 앞에서 양 군을 일으켜 세웠다. 미간을 최대한 찌푸리고 목소리는 굵게 내려고 노력했다. “지금 장난 하냐? 내가 만만해? 왜 말을 해도 안 들어먹어?” 이 교사의 목소리는 교실을 쩌렁 울렸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양 군은 물론, 그때까지 주변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다른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화난 모습을 처음 보고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 이 교사는 “양 군은 바로 다음날 사진을 가져오고 지각하는 학생들도 둘째 주엔 반으로 줄었다”면서 “속으론 아이들이 마냥 귀엽지만, 요즘엔 애들이 복도에서 인사를 해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만 까닥여 준다”고 말했다.

j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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