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가 주최하고 윤선생영어교실이 후원한 영어철자 말하기 대회인 ‘2011 내셔널 스펠링 비’가 지난달 23일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렸다. 윤선생영어교실 제공
《“베설레이트” 잠시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세계적 영어철자 말하기 대회인 ‘내셔널 스펠링 비(NSB)’ 출제위원인 베일리 박사의 발음을 들은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May I have the definition, please(정의를 알려주시겠어요)?” “To waver in mind, will, or feeling(마음, 의지 또는 느낌이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May I have the origin, please(어원을 알려주시겠어요)?” “Latin(라틴어입니다).” “베설레이트. v, a, c, i, l, a, t, e. 베설레이트…?” 조심스럽게 단어를 말한 학생이 마른침을 삼킨다. 잠시 뒤 베일리 박사가 운을 뗀다. “The correct spelling is v, a, c, i, l, l, a, t, e. vacillate(정답은 v, a, c, i, l, l, a, t, e. vacillate((의견, 생각이) 흔들리다)입니다).” 단어 안에서 두 번 반복되는 철자인 ‘l’을 하나만 말했다. 관중석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난달 23일 건국대 서울캠퍼스 새천년관에서 진행된 ‘2011 내셔널 스펠링 비’ 대회 현장.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영어철자 말하기 대회인 ‘스크립트 내셔널 스펠링 비’에 참가할 한국 대표를 선발하고자 열린 것으로 이날 대회의 결선에는 초중학생 91명이 참가했다.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가 주최하고 윤선생영어교실이 후원한 이 대회는 철자가 틀리면 탈락하고 옳은 철자를 말한 학생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학생은 2008, 2009년 이 대회 우승자인 서지원 양(14·경기 문정중 2학년)과 2010년 우승자인 김현수 양(15·서울 대원중 3학년). 19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 양이 ‘radicchio(적색 치커리)’의 철자 중 ‘h’를 발음하지 않아 안타깝게 탈락했다. 반면 서 양은 ‘proboscis((코끼리 같은 동물의 길고 신축성 있는) 코)’의 철자를 맞혔다. 그리고 우승자를 결정하는 챔피언 단어에 도전했다.
“데뉴망 or(또는) 데뉴먼트.”
‘2011 내셔널 스펠링 비’에서 대상을 받은 경기 문정중 2학년 서지원 양.베일리 박사의 발음을 들은 서 양이 단어의 어원과 뜻, 단어를 사용한 예문을 차분히 물었다. 베일리 박사의 대답을 들은 서 양이 담담하게 마이크에 다가서서 “데뉴망. d, e, n, o, u, e, m, e, n, t”라고 또박또박 읊었다. ‘denouement(대단원).’ 정답이었다.
한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서 양은 올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스크립트 내셔널 스펠링 비’ 최종 결선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그는 “한국 대표로 다시 대회에 나가게 됐는데 이번에는 꼭 세계대회 본선에 진출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회를 참관한 학부모와 관계자들은 ‘recalcitrance(고집)’, ‘legerdemain(손으로 부리는 재주)’, ‘sauerkraut(독일식 김치)’ 등 고난도 단어를 척척 맞히는 학생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어휘력을 높일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 어휘력, 독서력과 비례한다
대상을 수상한 서 양의 놀라운 어휘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서 양의 어머니 정은성 씨(41)는 ‘독서’라고 답했다. 이번 겨울방학에 서 양은 책 50권을 독파했다. 정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원서 400∼500권을 읽었고, 일주일에 5∼8권씩 한글로 된 책을 읽도록 했다”면서 “다양한 독서경험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주고 문맥 속에서 단어의 뜻을 유추해 내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책을 많이 읽었다. 이들은 한글로 된 책이나 영어 원서를 가리지 않고 독파했다.
은상을 수상한 김지영 양(15·부산 센텀중 3학년)도 영어 원서를 즐겨 읽으며 단어를 암기한 경우. 그가 이번 대회에서 맞힌 단어인 ‘phoenix(불사조)’는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와 불사조의 기사단(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을 읽으며 저절로 외운 단어였다. 김 양의 어머니 한영미 씨(48)는 “아이가 영어 원서를 읽고 있으면 테이프를 들려주거나 발음을 소리내 읽어보라고 지도했다”면서 “영어 원서를 읽고 에세이를 쓰다보니 저절로 어휘력이 늘었다”고 말했다. 은상을 수상한 정우성 군(13·서울 대원중 1학년)은 틈나는 대로 외국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는 축구선수 박지성이 활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열혈 팬. 정 군은 외국 홈페이지나 영국 신문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리미어리그 관련 기사를 읽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외국 기사를 접하며 난도 높은 단어를 암기했다.
○ 단어 암기의 핵심? 어원!
스펠링 비에 출제되는 단어는 약 3만 개. 이 많은 단어는 절대로 단순 암기로는 정복할 수 없다. 하지만 단어 형성의 규칙을 이해하면 쉽게 철자를 맞힐 수 있다. 베일리 박사는 “어원별로 단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소리와 철자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규칙을 파악해야 정확하게 정답을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상을 받은 김현수 양도 무작정 단어를 암기하지 않았다. 어원을 중심으로 공부한 뒤 어려운 단어를 따로 암기했다. 김 양은 “주어진 단어 목록 중 ‘발음이 안 되는 철자’ ‘쉽게 기억나지 않는 철자’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로 뽑힌 서 양은 ‘메리엄-웹스터’ 사전을 꼼꼼히 정독하면서 어원과 형성원리를 공부했다. 그러면서 어원 규칙, 단어 형성원리로는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한 단어들만 노트에 따로 적어 외웠다. 서 양은 “어원이 독일어이면 발음에서 ‘크’ 소리가 날 때 철자는 ‘ch’나 ‘k’라고 유추할 수 있다”면서 “같은 발음이라도 어원에 따라 철자가 다르므로 대회 현장에서도 꼭 어원을 되짚어 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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