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첫 발생지’ 가보니]김용락 시인의 경북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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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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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은 끝났겠지 했는데… 설날 고향은 여전히 감옥 같았다”

텅 빈 축사 보면 눈물만… “매일 아침 눈 맞추던 순하고 예쁜 것들이었는데….” 경북 안동시 임동면에 사는 박태용 씨(70·왼쪽)의 아내 문순남 씨(67)가 구제역 때문에 도살처분한 한우 22마리를 떠올리며 텅 빈 우리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안동=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텅 빈 축사 보면 눈물만… “매일 아침 눈 맞추던 순하고 예쁜 것들이었는데….” 경북 안동시 임동면에 사는 박태용 씨(70·왼쪽)의 아내 문순남 씨(67)가 구제역 때문에 도살처분한 한우 22마리를 떠올리며 텅 빈 우리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안동=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필자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30분 거리에 있는 안동에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보내고 이곳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사실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시인으로, 교수로 생활한 지 20년이 넘은 요즘 미디어를 통해 접한 고향의 구제역 소식은 다른 뉴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설 전날인 2일 동아일보 취재팀과 함께 찾은 고향의 상황은 한마디로 ‘재앙’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었다. 안동, 영주, 봉화, 의성 등 경북 북부지역 전역이 구제역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 수십 년 만에 닥친 한파와 가뭄으로 집집마다 수도가 동파돼 물 부족, 통행 불편 등의 총체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 구제역 확산이 두려운 설 연휴

2일 경북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서현축산단지. 설 전날인데도 이곳을 지키는 주민과 공무원들 사이에는 마치 전시에 경계근무를 서는 듯한 비장함이 배어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29일 첫 구제역이 발생한 곳으로, 도살처분이 모두 마무리돼 방역이나 출입 통제가 느슨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축산단지 내부로 들어가려고 하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라며 제지했다. 마침 장비를 실은 트럭 한 대가 이곳에 도착했다. 이곳 농장주 한 명이 축사 내부를 정비하고 새롭게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부른 작업 인부들이었다. 그냥 들어가려는 인부들과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4명의 인부는 회색 방역복을 입고 출입기록을 기재한 뒤에야 축산단지 안으로 어렵사리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주민 권석만 씨(72)는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3교대로 24시간 이곳을 지키고 있다. 설 명절 때 구제역이 다시 확산될까 봐 걱정스러워 제대로 눈도 못 붙인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설 연휴가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구제역을 옮길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기간이었다. 다른 주민은 “구제역 종식 선언이 나와야 편안하게 발을 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제역은 지금 이 시간에도 꺾이지 않고 계속 확산되고 있었다.

○ 고민 깊어지는 축산 농가들

서현축산단지에서 차로 5분 거리인 곳에서 한우를 기르던 김세호 씨(48)는 구제역 발생지에서 반경 3km 내에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초 자식 같은 한우 70마리를 도살처분해야 했다. 한우 100마리를 2∼3년 동안 정성들여 키운 뒤 30마리를 출하한 시점에서 청천벽력 같은 구제역 파동을 맞은 김 씨는 이제는 조금씩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했다.

그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 태2리, 가매1리, 주아2리 등 인근 마을 전체 50여 농가 가운데 18농가에서 800마리의 소를 키웠는데 지난해 12월 5일 이전에 모두 도살처분해 공동 매몰했다고 말했다. 축산농가에는 소가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키우던 소를 하루아침에 죽이려니까 그 심정이 어떻겠느냐”며 김 씨가 되묻기도 했다. 이웃 임동면에서는 송아지를 낳은 지 2시간이 채 안 된 소를 도살처분한 얘기가 마을을 무겁게 짓눌렀다. 보통 소는 주사 한 대를 놓으면 쉽게 쓰러지는 데 반해 이 소는 한 대를 더 맞은 후에야 죽었다고 한다. 방금 낳은 송아지에 대한 모정이 이 소를 버티게 한 것 아니냐는 한 축산농민의 해석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지역에서 만난 한 굴착기 기사는 살아서 웅덩이를 기어오르는 돼지를 삽날로 다시 밀어 넣고 산 채로 흙을 덮은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 씨의 요즘 고민은 언제쯤 구제역이 완전 종식돼 소를 다시 사서 키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6∼7월이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2차 백신 접종지역에서 다시 구제역이 나타나면 올해는 그냥 허송세월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오히려 도살처분을 면하고 백신 접종을 받은 소와 돼지를 기르는 축산농가들의 시름이 더 깊은 듯했다. 양성으로 판명되면 다시 도살처분해야 되는데 구제역 발생 초기에 도살처분한 농가에 비해 두 달 정도 더 들어간 사료 값이나 언제 출하할지 모르고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점, 백신을 맞았다고 소비자들이 기피하면서 경매가격이 떨어지는 점 등이 복합돼 구제역을 피한 농가에서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컸다. 무엇보다 구제역으로 인해 경북 북부 지역의 경제는 붕괴 직전인 듯했다. 시내 상점의 주 고객인 농민들이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아 문을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었다. 특히 예년 같으면 산지의 농작물을 도시로 판매하는 택배비용이 연 1억 원은 됐는데 구제역 이후 물량이 70∼80% 줄어 농민들을 시름에 빠뜨렸다.

○ 감옥 생활로 명절은 온데간데없고

김용락 시인이 2일 최근 돼지 도살처분을 끝낸 경북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신소독을 준비하고 있다.
김용락 시인이 2일 최근 돼지 도살처분을 끝낸 경북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신소독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돼지 도살처분을 끝낸 경북 봉화군 봉화읍 도촌1리와 2리의 분위기는 안동과는 사뭇 달랐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경계가 삼엄한 가운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취재진이라고 양해를 구한 뒤 간이 화장실처럼 생긴 긴 통속에 들어가 뿌연 포말로 몸 소독을 하고 겨우 마을 어귀 통제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산골짜기 전체에 폐업한 축사와 돈사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김원환 씨(46)는 “구제역이 돌고부터는 동네 사람들끼리 전혀 왕래를 하지 않고 있다. 소 키우는 집에 방문했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서로 간에 난처할 것 같아서 전혀 왕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동창들과 명절이면 술자리도 가지면서 회포를 풀었는데 설 명절을 앞두고 이웃끼리 오가지도 못하는 이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고 낭패감을 드러냈다.

김 씨 집 바로 옆에 소 대여섯 마리가 사육되는 게 보여서 좀 가까이에서 살펴보려고 다가갔더니 좁은 길에 트랙터 한 대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주인이 동네 주민의 통행을 막기 위해 며칠 전부터 막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취재진이 “트랙터를 치우고 축사에 접근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김 씨는 “책임 못 진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동네 끝에 가면 구제역으로 소를 도살처분한 집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그 집에 도착해 방문 목적을 밝히자 집 주인은 “전체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받고 개별 농가를 방문해야지,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화를 내는 바람에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물러났다. 구제역을 겪으면서 지역 농민들의 감정이 상당히 격해져 있었다. 이는 구제역을 조기에 차단하지 못하고 확산시킨 정부와 공무원 언론 등에 대한 반감이 그대로 여과 없이 투영된 것처럼 보였다.

이날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갔다. 이곳은 필자가 태어난 곳이다. 저녁에 장터에서 열린 필자의 초등학교 동창 계모임에 참석했는데, 이곳에서도 단연 구제역이 화제였다. 상대적으로 이 지역의 구제역 피해는 크지 않았던 탓인지 주로 예방방역을 하면서 겪었던 고생담이 흘러나왔으며, 서둘러 정부가 구제역 사태를 끝내주기를 기원하는 목소리로 시름 짙은 농민들의 설 명절 밤은 깊어갔다.

김용락 시인·경북외국어대 국제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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