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를 지휘해온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51·사법시험 25회)가 28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남 지검장은 이날 오전 11시24분 검찰 내부 통신망에 법정 스님의 저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제목으로 한 글을 통해 "이제 때가 왔다고 판단해 정근 고향, 검찰을 떠나려 한다"고 밝혔다. 남 지검장은 최근 청와대 일각에서 한화 수사가 과잉 수사라는 지적과 함께 교체론이 일자 이에 반발해 먼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남 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내부가 술렁이는 등 파장이 예상된다. 일선 검사들은 "한화그룹 수사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도 아니고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 때문에 수사가 삐걱댄 것인데, 남 지검장을 문책성으로 교체하려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28일 오후 권재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만나 고검장급 및 일부 검사장 인사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으며, 회동 직후 인사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청와대와 이 장관은 남 지검장 교체 문제도 협의해왔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였다.
다음은 남 지검장이 이날 오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 전문(全文). <아름다운 마무리>
이제 저에게도 때가 왔다고 판단해서 정든 고향, 검찰을 떠나려 합니다.
법조계가 무언지, 검사가 무언지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그저 시험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법대에 들어갔고, 친구들을 따라 다니다가 우연히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됐으며, 검사시보 시절 열정적으로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한가족처럼 지내는 사무실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끌려 검사직을 지망하게 되었고, 결국 이 곳에서 청춘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기회 덕분에 정의감, 바른 자세, 억울한 사람 만들면 안된다는 교훈 등 귀중한 가치를 배웠고, 그 대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시간을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그동안 저의 작은 그릇에서 비롯된 편협한 생각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신 여러 분들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믿는다."(법정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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