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강 청장 만나는데… 승진 부탁할 거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2일 03시 00분


■ ‘함바 게이트’ 주역 유상봉씨 ‘끗발 인맥’ 과시

2006년 부산 해운대경찰서장이던 김철준 부산지방경찰청 차장은 강희락 전 경찰청장(당시 부산경찰청장)으로부터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평소 잘 아는 형님 한 분이 찾아갈 테니 한번 만나보라”는 지시였다. 다음 날 집무실로 김 차장을 찾아온 사람은 최근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된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브로커 유상봉 씨(65)였다. 유 씨는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 함바집 운영권을 따고 싶으니 건설현장 소장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고 김 차장은 그 지역을 담당하는 경찰 정보관을 유 씨에게 연결해 줬다. 3년 뒤인 2009년 8월에도 강 전 청장은 김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유 씨가 전화할 테니 애로사항을 조치해 달라’고 지시했고 김 차장은 얼마 뒤 “관내 건설현장 소장을 소개해 달라”는 유 씨의 전화를 받았다. 이때 유 씨는 “강 전 청장을 만나러 가는데 승진이라든지 부탁할 건 없느냐”고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현직 경무관과 총경 등 경찰간부 여러 명이 강 전 청장의 소개로 유 씨를 접촉했던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본보 11일자 A5면 참조
[‘함바집 게이트’]브로커 유씨 측근이 밝힌 로비 수법


경찰청이 총경 이상 간부로부터 이날까지 취합한 ‘유 씨 접촉 여부 자진신고’에는 김 차장과 총경 4명 등 최소 5명이 강 전 청장 등의 부탁을 받아 유 씨와 접촉한 적이 있다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대구경찰청 소속 김모 총경은 일선 경찰서장 시절 김병철 울산경찰청장의 부탁으로, 충남경찰청 김모 총경은 강 전 청장의 소개로 유 씨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9일과 10일 검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대구청의 김 총경은 “지난해 10월 28일 유 씨가 서장실로 찾아와 경주 건천에 건설 중인 양성자가속기 건설현장에 도시락 공급을 하려는데 경주시장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며 “그러나 나는 거간꾼이 아니고 개인영업을 하는 일에 시장을 소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유 씨를 김 총경에게 소개했던 김병철 청장은 6일 해명자료를 통해 “유 씨를 몇 차례 만난 적은 있지만 사업 관련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유 씨의 사업 편의를 위해 부하를 연결시켜준 사실이 드러난 것.

충남청 김 총경은 당진경찰서장이던 2006∼2007년 강 전 청장(당시 경찰청 차장)의 전화를 받고 집무실에서 유 씨와 만났으며, 2008년 천안서장 때도 유 씨를 만났다고 자진신고했다. 김 총경은 유 씨의 청탁을 모두 거절했다고 밝히고 금품 수수도 부인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11일 “내가 직접 자진신고를 받아봤지만 신고 내용만으로 보면 형사입건을 하거나 징계할 만한 대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감찰담당관실에 자진신고 내용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한편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여환섭)는 이날 유 씨로부터 경찰 인사 청탁 등과 함께 1억 원가량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강 전 청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검찰은 유 씨로부터 3500만 원을 받은 의혹이 있는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을 12일 오후 2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경찰 간부 6명의 재산 변동 내용을 파악하고자 행정안전부에 최근 수년간 공직자 재산등록 자료를 요청했다. 이 6명은 강 전 청장과 이 전 청장, 이동선 전 경찰청 경무국장, 박기륜 전 경기경찰청 2차장, 김병철 울산경찰청장,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이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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