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법 윤종수 부장판사 5년째 뜻깊은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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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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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선 저작권 위법 판결… 밖에선 저작권 공유 운동

법정에서 그는 저작권법 위반 사건의 판결을 내리는 엄정한 ‘판사’다. 법정 밖에서는 저작권 공유를 외치는 ‘운동가’다. 인천지방법원 형사4부 윤종수 부장판사(46·사진)는 5년째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윤 판사는 2005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CCKOREA)’를 설립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CC)는 저작자가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폐쇄적으로 행사하는 대신 유연하게 권리를 행사해 창작물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저작자가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이라는 자발적 공유 표시방식을 사용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한 신인 가수가 자기 노래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는 것보다 공짜로 음원을 공개해 음악을 알리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한다면 저작자와 출처를 표시하고 비영리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조건 등을 지키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달아 공개할 수 있다는 것.

미국CC는 2005년 법조인들이 주축이 된 ‘한국정보법학회’에 한국지부 설립을 제안했다. PC통신 시절 오디오·비디오 동호회 운영자를 맡은 경력이 있고 특히 온라인상 저작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윤 판사가 CCKOREA를 이끌 적임자로 꼽혔다. “미국에서도 CC라는 개념이 2002년 처음 만들어졌으니 국내에서는 얼마나 생소했겠어요. CC운동을 시작하면서 저작권법에 대한 공부도 새로 했습니다.” CC 홍보활동을 하면서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관련 세미나 행사장에 플래카드를 거는 일은 모두 윤 판사 몫이었다. 앞장을 서면서 ‘돌 맞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CC 분야 파워 블로거들은 “판사가 뭘 안다고 설치느냐”며 비딱하게 보기도 했다는 것. “CCKOREA 홈페이지에 달린 비판 글마다 댓글을 달았습니다. 파워 블로거들을 모아 놓고 ‘나도 잘 모르는 게 많지만 CC가 추구하는 가치를 넓히는 게 필요하다면 함께하자’고 호소도 했습니다.”

윤 판사는 저작권 관련 토론회의 강연자로 가수 조PD를 초청한 일화를 소개했다. 윤 판사가 이 일로 조PD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조PD는 덜컥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대꾸했다는 것. 나중에 조PD는 이때 경험을 ‘free music’이란 곡으로 만들어 무료로 공개했다고 한다. CCKOREA 발족식에 축사를 하러 온 한 인사는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은 다 때려잡아야 한다”고 엉뚱한 말을 해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고 윤 판사는 전했다. “지금은 조PD도 저희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자원봉사자들도 꾸준히 모입니다.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도 늘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윤 판사는 법정에서 어린 학생들이 저작권을 위반했다며 처벌을 받는 모습을 접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저작권을 위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는 문화적 환경을 만든 어른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CCK는 26일까지 포털사이트 다음, 네이버, 네이트와 함께 ‘지식나눔 캠페인’(campaign.cckorea.org)을 벌인다. 유용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CCL 콘텐츠를 포털사이트에 적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자유로운 이용이 허락된 음원과 사진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리믹스 콘테스트도 함께 열린다. ‘장기하와 얼굴들’과 ‘치즈스테레오’ 등 뮤지션들이 콘테스트를 위해 음원을 무료로 공개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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