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인요양시설 새벽 화재… 할머니 10명 사망 17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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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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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경보기 없어도 OK?… ‘火’키운 소방법

12일 경북 포항시 인덕노인요양센터 1층 화재 현장에 6개월 전 어버이날 받은 것으로 보이는 카네이션 조화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카네이션에는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날 화재로 요양 중인 노인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포항=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12일 경북 포항시 인덕노인요양센터 1층 화재 현장에 6개월 전 어버이날 받은 것으로 보이는 카네이션 조화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카네이션에는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날 화재로 요양 중인 노인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포항=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노인요양원에서 새벽에 불이 나 할머니 10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12일 오전 4시 10분경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인덕노인요양센터(2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김분란 씨(84·여) 등 70∼90대 할머니 10명이 숨졌다. 또 조연화 씨(75·여) 등 17명이 다쳐 포항의료원과 포항 세명기독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불은 1층에 있는 16.5m²(약 5평) 규모의 사무실 한 칸을 태우고 30여 분 만에 진화됐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해 인명피해가 컸다. 불을 처음 발견한 야간안전관리자 최성자 씨(63·여)는 “휴게실에서 잠을 자던 중 불빛이 보여 나가 보니 사무실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1층 사무실 천장 부근이 심하게 탄 점 등으로 미뤄 전기 합선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하고 있다.

○ 참혹한 화재 현장

이날 화마가 덮친 인덕노인요양센터 건물은 외관상 멀쩡해 보였다. 1층 사무실만 조금 태우고 진화된 ‘소규모 화재’였기 때문. 하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벽면과 천장이 검게 그을려 있어 화재 당시 긴박한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건물 내부에는 매캐한 냄새가 여전했다. 최초 발화지점으로 보이는 사무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불에 탄 의자는 이리저리 널려 있었고 책장은 뼈대만 남았다. 사무실 천장은 불길을 이겨내지 못한 듯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경찰이 전기 합선이 일어난 곳이라고 추정한 배전반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할머니들이 사망한 1호실이나 2호실에서 1층 출입구까지 거리가 5∼10m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가 아니었다면 불이 났을 때 충분히 대피할 수 있는 거리였다.

○ 화재경보기 스프링클러도 없어

이 요양센터(총면적 387m²·약 117평)에는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노유자(노인과 어린이) 시설의 경우 총면적 400m²(약 121평) 이상만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 또 스프링클러는 총면적 600m²(약 181평) 이상에만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화재 신고가 늦어진 것도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 추정된다. 야간안전관리자 최 씨는 옆 건물 포스코기술연구소로 달려가 화재 신고 요청을 했다. 이 연구소는 119로 신고하지 않고 포스코 자체 소방서에 신고해 여기서 다시 경북도소방본부에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 정부·포항시 사고 수습 분주

김황식 국무총리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도록 관련 기관에 지시했다. 또 김 총리는 행정안전부, 소방방재청을 중심으로 노인, 아동, 장애인 집단수용시설의 관리실태를 특별점검하고 안전관리를 강화하라고 당부했다. 포항시는 이 요양시설이 화재 1건당 총액 1억 원의 보험만 가입해 보상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박승호 시장은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만큼 시 차원에서 성금모금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포항=최성진 기자 choi@donga.com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日출장 갔다 오늘 찾아뵈려했는데” 유족 오열 ▼

12일 인덕노인요양센터 화재 사상자들이 옮겨진 포항 주요 병원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사망자 4명과 부상자 9명이 이송된 포항 세명기독병원에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유족의 오열이 끊이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부상한 할머니들도 허공만 바라보는 등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망자 장후불 씨(73)의 아들 김모 씨(54)는 병원에 안치된 어머니 시신을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그는 “시신이 많이 훼손돼 어머니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보내드리다니 참담하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사망자 김분란 씨(84·여) 유가족들은 오열하며 쓰러졌다. 큰아들 이재우 씨(63·부산 해운대구 재송동)는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11일 부산에 도착했다. 오늘 어머니를 뵈러 요양센터에 올 계획이었는데…”라며 원통해했다. 둘째 아들 이한우 씨(61)는 통화에서 “보상금 합의가 빨리 안 이뤄져 어머니가 차디찬 곳에 누워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상자 8명이 옮겨진 포항성모병원도 사정이 비슷했다. 일부 할머니들은 부상 정도가 가벼워 일반 병실로 자리를 옮겼지만 충격 때문에 말을 제대로 못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부상자도 보였다.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김순림 씨(76·여)는 응급의료센터에서 계속 울음을 터뜨렸다. 화재 사고 기억이 떠오른다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김 씨 가족은 “아비규환의 화재 현장을 겪어서인지 링거 맞는 것도 싫어하고 병원 치료조차 거부하고 있다”며 슬퍼했다. 또 다른 부상자 가족은 간병인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며 요양센터 직원에게 항의하는 등 소동을 빚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 입원하고 있는 김송이 씨(86·여)는 화재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몸서리를 쳤다. 요양센터 1층에 있었던 그는 다른 할머니 10명이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아이고, 아이고, 정말인가”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 그는 “잠이 안 와서 계속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전등불이 꺼졌다”며 “목이 너무 따가워서 요양센터 직원을 목청껏 불렀다”고 회상했다. 김 씨의 부상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온 아들 오용걸 씨(52)는 “병원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성모병원 관계자는 “부상자들은 유독물질을 흡입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항=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사망 할머니 명단 및 안치 장소

▽포항의료원 △김희순(71) △정매기(76) △권봉순 씨(95)

▽포항제일장례식장 △김복선(83) △김송죽 씨(90)

▽에스병원 △형순연 씨(81)

▽성모병원 △김분란 씨(84)

▽청주장례식장
△양정석 씨(87)

▽포항세명기독병원 △정귀덕 씨(78)

▽오천제일장례
△장후불 씨(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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