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11명 압수수색 후폭풍]전면대치 치닫는 정국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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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마다 검찰 성토장… 예산심의 첫날부터 손놓은 국회

검찰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로비 수사로 국회 예산정국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8일부터 예산안 심의의 막이 올랐지만 야당 의원들의 거세 반발로 국회 각 상임위는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를 맞았다. 여당은 청목회 수사와 예산 심의를 분리 처리하자고 야당에 요구하고 있으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 5당은 공동전선을 구축하며 파상공세에 들어갔다. 여야 간 극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한 예산국회는 당분간 표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정국, 정면 대치로 치닫나

야 5당은 8일 검찰의 각종 부실수사 및 비리연루 의혹을 겨냥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검찰 수사를 정면으로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야당들은 검찰권 견제를 위해 그동안 정치권에서 논의돼온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카드도 꺼내들 태세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별도 회담을 열어 검찰 제도개혁과 검찰규탄 결의안 채택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날 박희태 국회의장의 주선으로 한나라당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오찬 회동을 열었지만 싸늘한 신경전만 벌이다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박 원내대표는 1시간 반 동안 이어진 오찬에서 “긴급 현안 질의를 위해 국회 본회의를 하루 열자”고 제안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을 불러 따져 묻겠다는 것이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여러 현안을 일괄 타결하자”며 대기업슈퍼마켓(SSM) 규제 법안 중 하나인 유통산업발전법 등 다른 현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했고 협상은 결렬됐다. 김 원내대표는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측은 오찬 이후에도 수시로 접촉했으나 이렇다 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9일 오전 박 의장의 주재로 열릴 6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어떤 수습 방안이 모색될지 주목된다. 민주당은 이 자리에서도 예산안 심의를 보이콧한 채 긴급 현안질의를 위한 본회의 개최를 거듭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야당이 검찰 수사를 거부하기로 한 데 대해 검찰은 의원 보좌관과 회계 담당자 등이 소환에 계속 불응할 경우 강제 구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정국 대치 국면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검찰 성토장 된 법사위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출석한 국회 법제사법위는 당초 71개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체회의에 앞서 야당 측이 “법무부의 현안보고를 먼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안 심사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검찰이 청목회 수사를 ‘국면전환용’으로 삼고 있다며 이 장관을 강하게 몰아세웠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과 관련해 몸통으로 지목돼온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과 이창세 서울북부지검장이 동향(경북 칠곡)에다 같은 고교(대구 오성고) 출신임을 들어 ‘대포폰 논란’의 물 타기 수사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검찰 출신인 한나라당의 주성영 박준선 의원은 “검찰 수사에 성역은 없다”며 검찰 수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지만 같은 당 소속 이두아 이정현 의원 등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부적절했다”는 야당 의원들과 보조를 맞췄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청목회 사건은 다른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며 “가급적 이른 시일에 수사를 끝내도록 지시하겠으며 후원금 전반으로 수사를 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 청목회 타깃, 행안위 ‘격분’

경찰청 예산 심의를 위해 열린 행정안전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썩였다.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처리한 상임위인 데다 압수수색을 받은 11명의 의원 중 5명이 이 위원회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안경률 위원장이 예산안 심의를 상정하자마자 여야 의원은 일제히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며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검찰 수사를 놓고 “피의사실을 자의적으로 언론에 흘려 국회의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인격 살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은 “발언 내용이 모두 속기록에 남고 특정 예산의 증액을 요구할 경우 검찰에 (로비 의혹을 받아) 기소될 수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예산안 심의를 할 수 없다”며 예산 심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날 법사위와 행안위를 포함해 모두 9개의 상임위가 열렸으나 정상적으로 회의가 진행된 상임위는 교육과학기술위 1곳뿐이었다. 그나마 교과위는 예산안 심의가 아닌 ‘상지대 등 분쟁사학정상화 관련 청문회’를 연 것이어서 예산국회 첫날 사실상 모든 상임위가 파행을 겪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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