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끝맺은 ‘행복전도사’

  • 동아일보

방송인 최윤희씨 “병마 고통 못견뎌”… 남편도 자살
누리꾼들 “늘 밝고 활기찬 모습에 힘 얻었는데 충격”

“사랑과 행복을 송금했습니다. 필요할 때 꺼내 쓰세요. 비밀번호는 방긋 웃음입니다.”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해 ‘행복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방송인 최윤희 씨(63·사진)가 병마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자살했다. 최 씨는 2년 전부터 흉반성 루푸스라는 면역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8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최 씨와 남편 김모 씨(72)는 7일 오후 8시 반경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모텔 지배인 최모 씨(40)는 “퇴실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전화를 걸어도 안 받아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부부가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최 씨는 모텔 방 침대에 바로 누운 채로 목에 졸린 흔적이 있었다. 남편은 화장실에서 끈으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남편이 최 씨의 목을 졸라 자살을 돕고 자신도 뒤따라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 테이블 위에는 최 씨가 직접 쓴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2년 전부터 몸에 이상이 생겨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다. 추석 전에는 폐에 물이 차 응급실에 실려 갔고 이번에는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더 이상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싶지 않다”고 적혀 있었다. 또 “700가지 통증을 겪어본 사람은 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겁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동반 자살 이유를 밝혔다. 최 씨는 유서 봉투 뒷면에 “완전 건장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 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라고 적었다.

부부가 사망하기 전날 최 씨의 일산신도시 자택을 찾았던 아들 김모 씨(38)는 “두 분이 여행을 다녀온다고 해서 몸이 많이 호전돼 요양을 다녀오시겠다는 뜻으로만 알았다. (동반 자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2년 전부터 흉반성 루푸스를 앓고 있었다. 각 신체기관에 만성적으로 염증을 불러일으키는 면역계 질환이다. 올 추석 전에는 폐에 물이 차는 세균성 폐렴 증세까지 보이는 등 병세가 악화됐다. 그는 추석 직후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땅끝 마을’에 혼자 가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남편이 119에 신고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일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최 씨 부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누리꾼들은 “늘 밝고 활기찬 모습에 힘을 얻었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유서를 읽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두 분이 영원한 사랑과 안식을 얻기를 기원한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와 같은 추모 글들을 올리며 두 사람의 명복을 빌었다.

최 씨는 전업주부로 지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38세에 뒤늦게 금강기획 카피라이터로 입사해 국장까지 승진했다. 2001년부터는 각종 방송에 출연해 행복과 웃음의 가치를 전했다. 예쁘지 않은 외모 때문에 스스로를 “엉겅퀴, 씀바귀, 고들빼기 등 삼종 혼합인간”이라고 부르면서도 “못생긴 거, 가난한 거, 무식한 거는 죄가 아니다. 죄는 딱 한 가지다. 열심히 안 사는 죄”라고 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행복 전도사, 행복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지난해에만 4권의 책을 펴내는 등 행복과 희망을 주제로 26권의 저서를 남겼다. 최 씨 부부의 시신은 현재 일산병원에 안치돼 있다. 아들 김 씨는 “빈소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차리지 않고 10일 인근에서 화장한다”고 밝혔다.

고양=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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