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3부]<9>패자부활 통로가 막혔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03 03:00수정 2010-09-0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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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는 주홍글씨 한 번 삐끗하면 낭떠러지
《‘실패.’ 한국에서 이 두 글자는 평생 따라다니는 주홍글씨다. 한 차례 치른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이후 30∼40년을 결정할 때가 많다. 직장생활도 그렇다. 한번 회사에서 해고되면 재취업은 요원하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실패하면 다음 사업은 자금 구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삐끗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늘 제자리를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다. 그래서 도전을 두려워한다. 단칼에 ‘루저’가 되는 사회. 이 구조에서 패자부활에 도전했던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사 중간의 굵은 글씨는 패자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해외 사례다.》

■ 형편에 맞춰 선택한 전문대… ‘학력 꼬리표’ 이렇게 끈질길 줄이야

한모 씨(31)는 고등학교를 2년 늦게 졸업했다. 성적이 나쁜 것도, 공부가 싫은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등굣길에서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1년 반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

1년 반 학교를 쉬다 보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수능 점수가 좋을 리 없었다. 대학생 친구들이 부러웠던 한 씨는 재수 대신 3년제인 A전문대 전산학과 진학을 선택했다. 3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 성적은 4.5 만점에 4.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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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씨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전문대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이른바 인기학과인 데다 성적도 좋았기 때문에 금방 취직이 될 줄 알았지만 전문대 졸업생이 원서를 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설령 지원이 가능하다 해도 합격자는 거의 4년제 대학 졸업자였다.

번번이 낙방한 한 씨는 마음을 고쳐먹고 수능을 다시 봐 수도권 소재 B국립대에 입학했다. 한 씨는 “실패의 낙인을 떼버리고 싶었다. 물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학비가 부담돼 B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학점, 토익점수를 차곡차곡 쌓아 B대를 졸업한 것은 3년 전. 한 씨는 중소기업에 들어갔다가 반년 만에 그만뒀다. 한 씨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전문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쉬 없어지지 않았다.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날마다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한 씨는 지난해 서울 지역 상위권 C대학원 시험에 붙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포기했다. 요즘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그는 “지금 상태로는 연봉 2000만 원대 정규직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수능 한 번으로 인생이 이렇게 힘들어질 줄 몰랐다”고 탄식했다. 수능에서 뒤처진 간격을 따라잡기 위해 10년째 땀 흘리고 있는 그에게 밝은 날이 언제쯤이나 올까.

→미국에선 명문 주립대에 ‘2년제 학생 편입’ 몫 할당… 실패 극복을 더 높이 사

한국은 전문대생이 4년제 대학에 편입하거나 명문 대학원을 졸업하더라도 ‘전문대 졸’이라는 학력은 업그레이드되지 않는다. 미국은 번듯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도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전문대)→주립대 편입→명문대 대학원’ 등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명문 주립대들의 경우 일정 정원은 지역 내 커뮤니티 칼리지 우수 학생들에게 할당하고 있다. 커뮤니티 칼리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를 커쳐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모 씨는 “미국에는 실패의 경험을 딛고 성공하면 더욱 값진 성공으로 평가하는 문화가 있다”며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을 결정짓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창업 실패한 전직 은행원… 한번 퇴직하면 재취업은 요원

이모 씨(43)는 한때 ‘잘나가던’ 엘리트 은행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은행에 취업한 것이 1991년. 1년 뒤인 1992년에 평화은행 창립멤버로 합류해 6년간 기업금융을 담당했다.

시련이 닥친 것은 1997년 창업을 위해 명예퇴직을 선택한 뒤부터다. 퇴직금으로 해외 유명 유통업체의 국내 판권을 따낸 그는 사업 초기에는 순이익만 월 6000만∼7000만 원을 올리며 전도유망한 젊은 기업인의 길을 다지는 듯했다. 하지만 판매하던 건강식품에 문제가 있다는 방송 보도가 나오면서 매출액은 급전직하했고 2년 만에 부도를 맞았다. 식품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부도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첫 실패 후에도 한동안 그는 자신만만했다. 30대 중반의 아직은 늦지 않은 나이에 탄탄한 은행원 경력, 짧았지만 짜릿했던 사업 성공의 기억으로 무장한 그는 이력서를 들고 재취업 전선에 나섰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기업들의 냉대뿐이었다. 경력사원 모집공고에는 분명 30대 후반까지 지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를 제치고 뽑힌 이들은 대부분 30대를 갓 넘긴 젊은 이직자들. 그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판매 영업사원을 뽑는 회사에서마저 낙방 통보를 받았다.

좌절에 빠진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에서 영업을 확장해 가던 한 외국계 은행에 3년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취업한 것. 정규직 신입사원에 비해서도 연봉이 30%가량 낮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에 그는 휴일도 반납하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정규직 문턱을 넘는 것은 힘들었다. 회사가 정규직 전환의 조건으로 내놓은 영업실적 기준이 갈수록 높아졌던 것. 함께 입사했던 계약직 동기 50여 명 대부분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한 것처럼 그도 결국 은행을 나와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 사장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되면서 이 일마저 잃고 말았다.

세 딸을 키우는 마흔 살의 가장. 그에게 일자리를 주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계를 잇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나섰다. 처음 해본 공사판 막일에 허리와 무릎을 다쳤지만 병원 치료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 씨는 최근 어렵사리 미소금융의 지원을 받아 돼지갈비집을 열어 희망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이 업종도 워낙 퇴출률이 높다고 하니 한편 불안하다.

→덴마크에선 지자체마다 고용센터… 재교육 - 재취업 알선 정부가 책임져

선진국의 근로자들은 경기가 나쁘면 쉬 해고된다. 그러나 경기가 좋아져 취업시장이 열리면 쉽게 재취업된다. 재취업이라고 해서 차별을 받는 일도 없다. ‘대기업 임원도 일단 퇴사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취업 문턱이 높은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또 선진국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재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고용 선진국으로 꼽히는 덴마크의 경우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센터가 설치돼 있어 재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에 대한 재교육과 취업알선을 책임지고 있다.

학자금대출 때문에 채무불이행자 낙인… 은행 문은 더욱 멀어지고…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김모 씨(26·여)에겐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다.

김 씨에게 채무불이행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은 2007년.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김 씨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녔다. 학비에 보태기 위해 한 학기도 빠짐없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3학년을 마칠 때쯤엔 빚이 2000만 원을 넘어섰다.

빚을 갚고 한 푼이라도 가족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작은 회사에 경리사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장기연체 때문에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50만 원 이상의 빚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은행연합회에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돼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려워진다.

김 씨는 채무불이행자라는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개인워크아웃은 빚이 5억 원 이하이면서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채무불이행자에게 최장 8년간 빚을 나누어 갚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 대상자로 확정되면 연체정보가 삭제되고 급여 압류가 해제되지만 그 대신 2년 이상 꾸준히 빚을 갚을 때까지 ‘신용회복 지원 중’이란 새로운 기록이 따라다닌다.

문제는 그 2년을 버텨낼 생활비였다. 개인워크아웃 절차를 밟더라도 10등급 중 9등급까지 떨어진 신용등급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업자에게까지 돈을 빌리게 되면서 김 씨는 개인워크아웃마저 중도 탈락했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쫓겨난 김 씨. 채무불이행자의 낙인 때문에 어디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된 그는 개인파산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 개인파산자가 되면 빚을 탕감받을 수 있지만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와 거래할 수 없게 된다. 김 씨는 “개인워크아웃을 해도 은행과 거래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며 “아무리 노력해도 채무불이행자라는 딱지를 떼기 어려워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신용불량 딱지 붙이기보다 납세 등 우량정보도 적극 반

선진국에서는 신용등급의 하락과 상승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미국에서는 연체기록 등 불량정보뿐만 아니라 우량정보들을 개인 신용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활용하는 우량정보도 세금 공과금 보험료 연금 납부 실적, 소득, 직업 유무 등 다양하다. 단순히 현재 상태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량기록이 누적되면 가중치를 부여해 신용등급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일본 이탈리아 등도 금융회사들이 불량 및 우량정보를 모두 공유해 개인신용평가의 정확성이 높다. 불량정보만 취합하는 국내와는 대조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신용이 좀 떨어져도 지원해주는 미소금융, 햇살론, 희망홀씨 등 서민금융제도가 마련된 것은 큰 진전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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