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롯데백화점에 자신의 브랜드로 매장을 내는 동대문패션창작스튜디오의 디자이너 박한힘 씨(왼쪽)와 이명신 씨(오른쪽). 10월 프랑스 파리 패션쇼에 참가하는 이윤경 씨(가운데)가 직접 만든 옷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산업통상진흥원 “아니, 너 왜 여기 있니?”
13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동대문 패션창작스튜디오. ‘로 클래식(Low Classic)’이라는 브랜드 이름이 적힌 명함을 건넸다. 그는 신인 디자이너 이명신 씨(24). 그는 이미 1년 전 서울시와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이 공동 주최한 패션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 출연해 이름이 알려졌다. 하지만 취업조차 되지 않을 만큼 현실은 냉혹했다. “무능하다”며 며칠 동안 울기도 했다. 결국 그는 집을 나와 방값이 싼 경기 성남시 반지하방에 터를 잡고 새로 시작했다. 원단시장이 있는 동대문까지는 2시간도 더 걸렸다. 자책하지 않으려고 새벽 첫 버스를 잡아타고 바삐 움직였다.
그러던 중 이 씨는 올해 1월 서울시에서 신인 디자이너 육성 공간인 ‘동대문 패션창작스튜디오’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반지하방을 정리하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반갑다”는 인사 대신 “(유명한 네가) 이곳에 왜 왔느냐”며 의아함부터 드러냈다. 꿋꿋하게 버텼다. 여성스러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틈바구니 속에서 이 씨는 남성복 느낌의 여성 트렌치코트로 차별화했다. 그는 8개월간 노력한 끝에 ‘로 클래식’을 27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 파리 진출·백화점 입점
이 씨가 꿈을 키운 동대문 패션창작스튜디오는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이 운영하는 신인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신인 디자이너 80명이 꿈을 키우기 위해 함께 거주하며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이곳에서 굵직한 성과가 났다. 이 씨를 비롯한 디자이너 3명이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편집매장에 27일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연다. ‘디자인 워커스’라는 브랜드로 입점하는 디자이너 박한힘 씨(32)는 채범석, 박성철 씨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 함께 롯데백화점 잠실점 편집매장에 둥지를 튼다. 그는 “과거 기성복 브랜드 회사에 있을 때 실적에 쫓기며 정신없이 옷을 만들었다”며 “정작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찾다보니 늦은 나이에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 킹스턴대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동료 한 명과 함께 가죽을 소재로 한 남성 재킷과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다. 다양한 소재와 색감을 쓰며 ‘감각’을 중시하는 20대 초반 디자이너들과 달리 클래시컬한 느낌을 강조했다.
해외로 진출하는 신인들도 생겼다.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신인 디자이너 패션쇼 ‘앳모스피어’에 6명의 디자이너가 참가한다. 앳모스피어는 파리 대표 패션쇼인 ‘프레타포르테’ 내 행사로 해외 바이어 5000여 명이 이 쇼를 찾는다. 파리행 티켓을 거머쥔 이윤경 씨(32)는 서울대 의류학과 출신으로 직접 옷을 디자인한 것은 패션창작스튜디오에 온 올해 1월부터다. 그는 “이론 공부가 아닌 ‘창작’을 해보고 싶어 도전했다”고 말했다.
○ 칼날 같은 현장
이곳에 입소한 디자이너 80명은 방 임대료와 관리비를 모두 면제 받는다. ‘창작’에 전념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혜택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6개월에 한 번씩 자신이 만든 옷으로 패션 관계자 및 자문위원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하위 20%(16명)에 든 디자이너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남은 사람들도 성적에 따라 방을 배정 받는다. 1인실은 1등부터 24등까지만 쓸 수 있으며 나머지는 2인실과 4인실에서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 최형욱, 최창숙 씨 등 이름난 디자이너들도 유명세와 상관없이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현장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아이디어 회의도 목소리를 낮춰가며 한다. 박찬영 SBA 서울패션센터 본부장은 “퇴실 조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살벌하리만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씨는 “함께 꿈을 키웠던 대학 동기들이 다 패션을 관두는 상황 속에서도 이런 공간이 마련된 것만으로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들의 최종 꿈은 같았다. 해외보다 한국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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